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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영화] 2% 부족한듯 은근한 공포

한국 공포영화 소재주의를 만나다

'가발(위)' 과 '첼로-홍미주일가살인사건. ([email protected])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영화가 등장한다. 가마솥같은 날씨에 ‘뭔가 자극적인게 없을까’라는 계절적인 기대심리가 공포영화의 원동력이다.

 

올여름도 한국공포영화들이 잇따라 선보였다. ‘분홍신’과 ‘여고괴담4-목소리’가 개봉한데 이어 ‘가발’과 ‘첼로-홍미주일가살인사건’이 간판을 내걸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4편의 공통분모인, ‘소재주의’다. ‘월하의 공동묘지’처럼 산발한 처녀귀신이 스크린을 장악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일상의 사물이나 존재를 공포의 소재로 삼고 있다. 여기에 주술적 금기를 덧씌워 관객들에게 달려든다. ‘분홍신’에는 신발이, ‘가발’은 가발, ‘첼로’에서는 첼로처럼 주인공들이 집착하는 사물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한이 깃들어져 있다.

 

그만큼 공포영화도 유행을 좇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공포영화가 갈수록 성숙해지고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과거만 해도 배우들의 과잉 연기나 깜짝놀래키는 사운드 등 과도한 공포유발장치로 억지공포를 강요했던 게 사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의 본성을 건들며 은근하게 공포감을 조성한다. 우회적인 만큼 즉각적인 반응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여운은 오랫동안 남는다.

 

이제 막 선보인 ‘첼로’와 개봉1주차인 ‘가발’을 통해 은근한 공포영화의 현주소를 만나본다.

 

△첼로-홍미주일가살인사건

 

대학에서 첼로를 가르치는 강사 홍미주(성현아)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큰딸을 제외하고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다. 어느날 첼로연주가 담긴 음악테이프를 전해받으면서 심상치않은 두려움이 몰려오고, 그녀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기라도 하듯 일가족 다섯명이 하나 둘씩 살해된다. 10년전 단짝친구의 교통사고 이후 첼로연주를 중단했던 미주와 첼로연주곡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진걸까.

 

‘첼로’는 시누이, 두딸, 남편 등 잇따르는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며 홍미주 스스로가 한겹 두겹 비밀의 허물을 벗어보이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의 죄의식과 동격으로 그려지는 첼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이 가시지않는다.

 

‘첼로’는 아무래도 호러퀸(공포영화의 여주인공)인 성현아를 위한 영화다. 가족 전원이 참혹하게 살해되는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성현아는 “내가 죽이지않았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온가족을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자, 어쩌면 자신이 범인일지도 모를 공포의 주체다. 베일에 쌓인 과거를 가진 신비의 여인으로 분한 성현아는 ‘역대 한국공포영화의 호러퀸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가 허튼소리로 들리지않는다.

 

성현아와 함께 ‘첼로’의 중심에 선 것은 음악. 영화의 절반이상이 첼로선율로 메워졌다. 특히 메인테마인 바하의 ‘샤콘느’는 극장문을 나선지 한참후에도 잔상이 남는다.

 

‘첼로’의 미덕은 잘 짜맞춰진 이야기구조. 미스터리의 퍼즐이 비교적 정교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공포의 강도는 약한 편이다. 등골을 서늘하게 허를 찌르는 반전도 없다. 빈약한 장치를 만회하기 위해 과장된 효과음을 남발한다는 느낌도 있다. ‘2%가 부족한 공포영화’랄까.

 

그래서인지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에서 싹틔운 공포감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심리극이 맞을 듯싶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서운 영화’를 지향했다는 감독의 말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고 볼 일이다.

 

CF와 뮤직비디오감독 출신인 이우철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러고보니 ‘빵과 우유’등으로 독립영화계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은 원신연감독도 ‘가발’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이들외에도 최근의 한국 공포영화는 신인감독들의 독무대. 공포영화라는 자극적인 장르에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가발

 

자극적이지 않고 은유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으로는 ‘첼로’보다 한수 위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했던가. 사람이 죽으면 신체부위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부패한다는 머리카락에 대한 금기는 절대적이다. 학창시절에는 시험전에는 머리를 깎거나 감지않는 사람도 많다. ‘머리카락이 기억을 먹고 자란다’는 속설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가발’은 최근의 공포영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소재를 내세웠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동생을 위해 언니는 가발을 선물한다. 가발을 쓰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파리하게 기력을 잃어가던 동생은 생기를 되찾지만 몸도 마음도 변해간다. 급기야 언니의 약혼자까지 유혹한다. ‘가발’은 가발을 매개삼아 돈독한 자매애가 결국은 질투와 욕망으로 변질되는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다.

 

특히 ‘누구의 머리로 만든 가발이었는가’가 밝혀지는 후반부에 들어서면, 원혼이 깃든 가발의 복수에 눈을 질끈 감는다. 자매의 애뜻함이 결국은 동성애의 어긋한 사랑으로 무너진다는 결론이 생소하지만 그만큼 반전의 묘미가 있다.

 

배우들의 대사를 최대한 줄이고 감정연기로 관심의 심리를 조여오는 방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한국영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유선과 최민서가 애증의 자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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