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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60년 풍상 겪은 중국음식점 '교동집'

40년전에 남긴 자장면 먹으러 온 할아버지며 음식 먹고는 도망간 고교생등 얘기거리도 풍성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양반과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는 교동. 일제때까지도 양반 아닌, 성(姓)자 부족한 사람들은 교동에서 살 수 없었다지만, 모두가 풍요로운 삶은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소수를 제외하고 교동에서도 오히려 고단하게 산 사람들이 더 많다.

 

돈 많은 부자 양반들의 경우 일찍이 교동을 떠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품팔이와 인력거 운반, 장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향교길과 은행나무길이 만나는 사거리에 위치한 ‘교동집’은 이들 교동 서민과 애환을 같이 해온 집이다. 10여평 남짓 작은 홀에, 허름한 중국 음식점이지만 현재의 자리에서 60년을 지탱했다.

 

지금의 주인 손종만씨(50)가 20년째 음식점을 하고 있으며, 직전 사람이 29년간 현 이름으로 중국집을 했단다. 그 전 사람은 쌀 가게와 빵 등 먹거리를 판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씨는 40년전 남긴 자장면 먹으러 창원에서 왔다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창원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아버지가 교동집에서 사준 자장면을 처음 먹게 됐단다. 당시 주인은 자장면을 처음 보는 소년에게 실컷 먹을 수 있게 많은 양을 내놓았고, 소년은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해 그때 남긴 자장면이 평생 아물거렸다. 그 추억을 찾아 할아버지가 교동집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자장면 먹고 뒷문으로 도망갔던 고교생 일화나, 골목으로 풍겨나오는 자장면 냄새에 많은 사람들이 홀겼다는 사례 등 교동집 60년 풍상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한다.

 

“지금은 노인들 밖에 없어 자장면 시켜 먹는 집이 거의 없어요. 90년대 초반까지도 한 집에 여러 세대가 세들어 살았고, 손이 모자랄 정도로 주문이 밀렸던 시절이 있었지요.”

 

손씨는 이집에서 두명의 자녀를 대학까지 보냈고, 노후도 준비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교동의 애환을 담아온 이집이 도로 확포장 계획에 따라 멀지 않은 시간에 자취를 감출 것 같아 안타깝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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