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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부농마을 변신 성공한 김제 죽산 장돌마을

탄탄한 품앗이 기반 공동영농 친환경농법으로 농업위기 탈출

장돌친환경쌀 영농법인을 이끌고 있는 김연수 회장과 김수환 총무. ([email protected])

눈앞에 펼쳐진 들판은 넓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가을 햇빛 아래서 출렁였다.

 

농삿일도 흐름을 탄다. 환경이 바뀌면 삶의 환경도 바뀌기 마련. 식문화도 이 변화의 물결에서 제외 될 수는 없다.

 

참살이 문화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주식인 쌀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친환경농법의 성장은 그 결과다.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 장돌마을은 친환경농법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농가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이 친환경농법 유기농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영농조합 성격의 협업농을 만들었다. 유기농은 집단화하고 공동 영농으로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유기농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 장돌마을은 전국적으로도 관심을 모으는 친환경농법 성공마을이 됐다. 장돌마을이 큰 갈등없이 협업농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예부터 내려온 마을전통 덕분이다.

 

“품앗이 문화가 그 어느 마을보다도 탄탄했습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갈등없이 영농법인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데는 그 힘이 컸지요.”

 

장돌친환경쌀 영농법인을 이끌고 있는 김연수회장(64)과 김수환총무(56)는 유기농을 선택한 덕에 평범한 농촌마을에서 부자 마을이 됐다며 웃었다.

 

지난해 장돌마을의 ‘스테비아 쌀’은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관행농법에 기대지 않고 액비와 녹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실이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고비는 지난 2003년에 맞았다. 본격적으로 영농법인을 만들어 출범한 첫해 성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집행부를 향해 항의가 쏟아졌다. 섭섭하기도 했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농법을 과학화하고 영농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연구작업이 절실해졌다. 집행부는 영농일지를 만들었다. 기계와 화학비료 대신 자연비료와 사람의 손으로 대신해야하는 친환경농법으로 노동의 강도는 높아졌다.

 

“그러나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김총무는 말했다.

 

관행농법 대신 선택한 우렁이 쌀겨 오리 농법의 현장과 자운영, 어성초, 메리골드, 스테비아 등의 식물을 활용한 녹비와 액비 생산 현장이 상인들과 소비자들에게 공개됐다. 일본 바이어들을 통해 우리쌀의 역수출도 시도했다.

 

설명회만도 20여회. 농림부와 관계기관, 상인들이 장돌마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에는 녹비를 위해 마을 앞에 뿌린 자운영이 꽃을 피우면서 관광객이 몰리기도 했다.

 

장돌마을의 친환경농법은 성공한 예다. 현재 이 영농법인에는 마을의 27가구를 비롯해 인근 마을의 농가까지 34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김총무는 지난해부터 소비자들의 직거래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유통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아직은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직거래 환경을 갖출 계획이다.

 

“유명백화점의 명품으로 선정되어 팔리고 있지만 생산자만 밝혀져 있을 뿐 브랜드로서의 이름은 얻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장돌쌀’ 이름을 당당하게 얻는 것, 그것이 장돌친환경쌀 영농법인 사람들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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