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남문 위치 정확하지 않다"
“현재 풍남문은 1978∼80년도 사이에 정비·복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해 듣기로는 당시 옹성 복원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1734년 조현명 관찰사 재직시 개축한 이후 남문 옹성을 축조했다는 사실이 증빙되지 않는 한 현재의 풍남문 옹성 복원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8일 강원대 박물관에서 열린 심포지움 ‘한국사 연구와 고문서’에서 ‘18세기 전주부성(全州府城) 축성기록 「축성계초(築城啓草)」 연구’를 발표한 유재춘 강원대 교수(44). 그는 “조선후기 그려진 전주부성 그림을 보면 실제 옹성은 북문에만 설치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전주부성 남문에 옹성이 있었던, 1734년 개축 이전의 전주부성을 복원한 것이라고 강변한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럴 경우에도 지금의 위치가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현재 풍남문 역시 축조방식에서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전라감영 복원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는 시점에서 남문 옹성 복원의 타당성 문제가 감영 복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회에 충분한 고증을 받아 신중히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축성계초」의 기록은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입니다. 1997년 경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1차조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당시 겉표지가 다른 제목으로 달려 있었고 내지의 문서기록은 축성 기록 위에 다시 종이를 이중으로 붙이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한 「축성계초」의 내용이 알려진 것은 2003년 유교수가 풍양조씨가 소장문서를 재조사하면서. 한국 중세축성사가 전공인 그는 「축성계초」의 발견을 큰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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