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블로그 / 김애현
K2블로그 (김애현)
오래된 빌라 계단을 내려간다. 현관문 앞에 메모지가 붙어 있다. 잠시 다녀오마. 궁서체의 문장은 20포인트가 넘는 크기다. 용지에 출력한 문장의 양 옆을 넉넉히 잡아 자른 뒤 하트모양의 포스트잇 위에 덧붙여 놓았다. 포스트잇을 떼어내 힘껏 구긴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노란 실내등이 켜진다. 어둠이 조금 물러선다.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열심히 살자’라는 문구가 나를 맞는다. 다섯 자로 이뤄진 문구는 집 안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 궁서체의 글씨 중 가장 큰 것이다.
갈래머리 시절 붓글씨를 잘 쓰는, 가난한 집의 맏딸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가 던진 벼루에 이마를 찢기고 나서부터 붓을 놓았다던가. 아버지는, 그때 엄마가 붓을 놓지만 않았더라면 꽤나 이름난 서예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엄마의 필체는 언제 붓을 쥐었는가 싶게 형편없다. 때문에 작은 달력이나 냉장고 앞에 붙어 있는 ‘이 달의 좋은 글귀’의 전문(全文), 하다못해 금방 구겨버릴 메모까지 엄마는 컴퓨터의 글꼴인 궁서체에 의지한다.
엄마는 부모님 전상서 혹은 그때가 그리워요, 라는 문장과 어울리는 컴퓨터 글꼴 중 궁서체만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하곤 한다. 말투는 단호했으나 늘 엄마의 표정은 한껏 느슨해진다. 그 이완의 와중에서 엄마의 기억은 열네 살 적 아버지의 옆 얼굴을 훔쳐보는 동갑내기 계집애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붓으로 획을 마무리 지을 때 버릇처럼 좁혀지는 미간과 매끄러운 콧날 그리고 조금은 다부져 보이기 시작한 입매 따위. 엄마는 이제 막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그때의 계집애가 되어 잠시 동안 머문다. 고왔어, 정말 고왔어.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내 얼굴에 드리운 열네 살 적 아버지를 찾느라 아득해지곤 한다. 내 두 볼을 감싸 쥔 엄마의 손이 축축해질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열 네 살 적 얼굴을 불러온 궁서체가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나는 거실 벽으로 다가가 다섯 자의 먹빛 글씨를 노려본다. 엄마는 글씨의 크기를 백 포인트로 정하고 모두 열 장을 출력했다. 그리고 글씨를 오려내기 시작했다. 날렵한 가위 날이 궁서체의 둥근 모서리를 조금이라도 파먹으면 다른 용지를 주워들었다. 엄마는 자음과 모음을 정교하게 잘라낸 뒤 백색 하드보드지 위에 붙였다. 열심히 살자. 엄마는 그 문장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내게 말했다. 아버지가 죽기 훨씬 전부터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고 내게는 차라리 개나 물어가라지, 싶은 것이었다. 이제 그 문장은 궁서체의 그 어떤 글귀보다 강한, 삶의 정언이 되어 거실 벽에 붙어 있다. 그 앞에 서면 나는 궁서체의 다섯 자를 오려내던 가위처럼 마음 한구석에 날이 선다.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어.
‘산전수전’이라는 애칭을 달았을 때만해도 웹써핑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엄마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블로그를 꾸려가는 운영자다. 엄마의 써치(search)블로그는 서로 다른 12개의 블로그의 운영자들과 이웃을 맺고 있다. 대부분이 엄마처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중 몇은 전문산악인이라고 했다. 엄마와 그 이웃들은 두 달에 한 번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지식과 정보의 상호 교류를 통해 원활하고 안전한 산행을 위한 모임이었다. 최신형 산악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공동구매하는 방법이나 온라인으로 연결된 블로거들의 오프라인 산행을 주도하는 따위의 일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실행되기도 했다. 엄마는 산악전문서적을 뒤적였고 고가의 산악장비들을 한 푼이라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애썼다. 그런 엄마의 써치블로그에서 단연 이웃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산행일지다.
아버지가 죽은 뒤 몇 달간 엄마는 산에 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집 안의 묵은 때를 찾아 부엌과 비좁은 베란다 그리고 두 개의 방을 오가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엄마가 손을 댄 가구나 물건들에는 내 방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도 포함되었다. 엄마는 써치블로그를 만들었고 그 즈음 다시 산에 올랐다. 이번엔 혼자였다는 산행 소감문을 써치블로그의 메인 보드 위에 올렸다. 그렇게 산행일지가 시작되었다. 산행일지를 위해 엄마는 조금씩 높고 더 가파른 산을 택했다. 새로운 산행일지가 올려질 때마다 이웃들이 덧글을 달아 그 수고로움을 칭찬해 마지않는다고 엄마는 흡족해했다. 몇 개의 산행일지는 무려 422회나 스크랩 되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엄마는 써치블로그를 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듯 정성을 쏟았다. 주기적으로 블로그의 메인바탕을 바꾸고 글씨체를 사들였다.
-굴림체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산지기는 은화 네 닢을 주고 개나리체를 사서 쓰는데 내가 보기엔 별루야. 제대로 된 궁서체라면 금화 열 닢을 주고라도 당장 사 버릴 텐데.
엄마는 써치블로그에 빠져들었고 궁서체에 매달렸다. 나는, 그렇게라도 엄마가 내게 드리워진 열네 살 적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길 바랐다.
갈아입은 웃옷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방을 나온다. 엄마의 목소리는 가볍고 경쾌하다. 부엌으로 와 냉장고 옆 달력을 바라본다. 오늘 날짜 밑에 정기검진결과일이라고 쓰인 붉은 궁서체의 메모를 읽는다. 엄마는 내가 정상이라고,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한다. 육 개월 뒤, 예약 날짜를 잡는 중이라고 덧붙여 말한다. 수화기 저편에서 엄마는 기분이 참 좋다고 말한다. 너도 좋지? 엄마가 내게 물었지만 대꾸하지 않는다. 우리, 열심히 살자. 엄마의 말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수화기의 통화마침버튼을 눌러버린다.
거실 벽에 기대 물구나무를 선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골목을 지나는 몇 개의 발소리를 듣는다. 발소리가 내 몸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넌정상이래.엄마는참기분좋다.너두좋지?무서워할것없어,피는뽑은만큼다시생겨.알아,나도잘알아.가벼운기침에도혹은미열에도너를병원으로끌고갔었다는걸.네몸구석구석을살펴본후에라야집으로돌아오곤했지.정기검진일만되면숨어버리는,어린너를찾느라꽤나부산스러웠어.그런데참묘하지?나나,느이아버지나몸속어딘가에,너를찾는데는도통한,그런장치가있는것같아.혹여기에숨어있지않을까,혹저기에가있는것은아닐까,거길가보면넌반드시그곳에있었다니까.너에대해서라면그악스러울정도로열심인우리를치떨리도록싫어한단걸잘알아.하지만생각해봐.니가누군데.너는우리에게자식이상의의미야.우리,열심히,아주열심히살자……
사촌지간인 부모는 열심이라는 말을 생의 공통분모처럼 끌어안고 살았다. 아이가 생겼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갓난아기의 열손가락을 꼼꼼히 세어보았다. 백일이 지나도록 아이에 대해 안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아이를 원치 않았다. 두 번째 아이가 정상아일 것이란 확신이 서질 않아서였다. 딱 하나만, 열심히 잘 키우자. 열 손가락도 모자랄 정도로 이사를 다녔다. 가난했던 그들에게 산에 오르는 일은 유일한 사치였다. 그러니만큼 산을 오를 때 무엇이든 열심히 만끽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은 고향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은 산에 둘러 싸여 있었다. 아이가 그들에게 물었다. 또 산에 가? 1997년 7월17일, 동성동본금혼조항인 민법 제809조 제1항의 폐지 기사가 각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다. 그간 사실혼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남녀가 법적 부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외되었다. 여느 때처럼 산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 그들은 맞은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야호-.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멀리 내던진 소리가 되돌아올 쯤 그들은 마주보고 웃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가 물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뭐. 아버지는 열심히 사느라 당신 몸에 암이 생긴 것도 몰랐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아버지가 내린 결론은 단 한 가지였다. 열심히 살자, 남은 만큼.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무겁다. 순간, 두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 바닥에 이마를 대고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는다. 두 무릎을 구부려 턱 가까이에 끌어당긴다. 나는 웅크린 내 몸을 버리고 어디론가 달아나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목이 따갑다. 꾸역꾸역 마른침을 삼켜보지만 기어코 눈물이 나고야 만다. 눈물 많은 건 느이 아버질 닮아서 그래. 기름진 것보다 뒷맛이 개운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엄마를 닮아서라고 아버지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왼손에 가위를 쥘 때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아버지를 닮아서라고 말한다. 재채기를 하거나 걸레를 쥐어짜는 손동작, 때론 수화기를 목과 어깨 사이에 끼고 통화하는 모습조차 엄마를 닮아서였거나 아버지를 빼다 박은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부분 부분을 뚝뚝 떼어내 빚은 사람처럼, 그래서 나는 엄마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다.
너, 생리하지, 맞지?
전선생이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다. 짐작컨대 전선생은 오늘 일을 나의 지독한 생리증후군이 빚은 순간의 실수라고 회원들에게 둘러댄 모양이다. 나를 바라보던 몇몇 회원들의 얼굴표정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 수련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늘 일에 대한 목격담을 게시판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오전반 수영강사들의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처지이고 보면 관장에게 문책을 받는 일에 전선생은 느긋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임신 중인 그녀는 출산 후 다시 라인 배정을 받는 일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소한 입소문에도 회원들이 술렁여. 내가 부른 배로 물속에 있는 게 편해서 그런 줄 아냐? 다 회원관리 차원에서라고. 제발 회원들한테 나긋나긋하게 좀 굴어. 내가 보기에 그 여자 꽤나 열심이던데. 누가 너더러 그 여자 수영선수 만들라던?
처음, 나는 여자를 전선생의 라인으로 올려 보내려 했다. 하지만 전선생이 맡고 있는 마스터즈반은 모두 고정멤버들이었다. 아무나 올라올 수 없다는 자부심으로 결속되어 있어 텃세가 심한 편이었다. 두 달에 한 번씩 회원들의 라인 이동이 있었지만 전선생의 묵인 아래 마스터즈반은 늘 제외되었다. 내가 맡고 있는 중급반 두 개의 라인은 이미 인원제한 수를 넘겼다. 초급반이라고 사정이 나을 것도 없지만 애초 상급반으로 가야할 여자를 그곳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선생이 내 라인으로 여자를 들이라는 사인을 보냈다.
물을 차는 여자의 발동작은 힘찼다. 여자가 반대편 라인 끝을 향해 헤엄쳐 가는 동안 끊임없이 물이 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십 분의 수업 동안 여자는 지칠 줄 몰랐다. 몇 몇 회원들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며 수경을 벗어 올리고 여자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두 달이 되었을 즈음 여자는 라인의 속도를 조절하는 맨 앞 주자가 되었다. 회원들은 여자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강한 발힘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회원들이 기꺼이 여자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다이빙실력 때문이었다. 두 다리 쭉 펴고 하나. 머리 숙이며 둘. 두 팔은 귀 뒤에. 넷, 점프! 다이빙대 위에 올라선 여자는 두 다리를 바들거릴 뿐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여자는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순서를 다른 회원들에게 내주었다. 여자를 뒤에 남겨두고 거침없이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회원들은 그 날만큼 그녀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여자는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게 커피가 든 종이컵이나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음료수 캔을 내밀곤 했다. 나는 자판기가 있는 복도 한쪽에 서서 때론 간이의자에 앉아 여자가 준 음료수를 마셨다. 그러는 동안 여자는 제가 건넨 음료의 양만큼, 꼭 그만큼 만의 말을 준비해 온 사람처럼 내 곁에서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종이컵의 윗부분부터 조금씩 접어 구기거나 빈 캔의 중간 부분을 손톱으로 퉁기면 무슨 신호라도 받은 듯 말을 서둘러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에 대해서 나는, 쿨해서 나쁠 거야 없지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나를 기다리는 여자가 싫지도 좋지도 않은, 관계로 치자면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지만 그 또한 상관없었다. 알 수 없어요, 왜 그런지 몰라요, 혹은 그거 아세요, 선생님? 하는 따위의 말들이 여자가 건넨 음료를 마시는 동안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즈음이었다.
여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란 대략 십분 정도였다. 그 시간에 알맞게 음료를 나눠 마시는 일이 다소 불편하기는 했으나 나는 여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것으로 그 불편함을 상쇄시키곤 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주어진 시간에 맞춰 음료를 나눠 마시는 일 같은, 다소 불편함과는 달랐다. 빼버리면 그만일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사소하고 미미했으나 진원지를 알 수 없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코카투.
-어머, 걜 기억하시는구나.
그 날 여자는, 내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느라 정작 코카투에 대해 이렇다 할 얘기도 없이 자리를 떴다. 얼마 뒤 나는 여자의 코카투가 유황앵무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요, 나한테.
웃고 있는 여자에게 나는 말하는 새였냐고 물었다.
-남편하고 아들은 가끔 걜 보고 새대가리라고 놀려요. 그런데 선생님, 그거 아세요? 꼭 그게 나한테 하는 말 같아요. 왜 그런지 몰라요. 그냥 기분이 나빠져요.
코카투는 그녀만을 사랑하는 새였다. 나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거나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코카투의 사랑을 받는 여자는 행복할까, 궁금할 뿐이었다. 사랑이라니. 그 감정에 대해서라면 엄마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했고 나를 낳았으니까.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잔뜩 구겨진 종이컵에 혹은 우그러진 빈 캔의 어딘가에 뾰족한 새의 부리가 숨어 있는 듯 그것을 움켜쥔 내 손이 자꾸만 아팠다.
여자는 물속으로 쉽사리 뛰어들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면서도 끈질기게 다이빙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려요. 안 쳐다보면 좀 나을까 싶은 생각이 있나 봐요, 나한테.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물소리가 더 크게 들려요.
나는 시무룩해진 여자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래. 왜 다이빙대 위에 올라가기만 하면 눈을 질끈 감아버리냐구. 다른 애들처럼만 하란 말야. 네 건강을 위해서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되니. 느이 아버지나 나나 바라는 건 그것뿐야. 수영이 그렇게 싫으면 그만 둬. 다른 운동을 찾아보면 될 거야. 그게 아니라면 뛰어들어. 안 그러면 선생님한테 너를 밀어 넣으라고 말할 거야. 알았니? 알았으면 대답 좀 해봐!
나는 질끈 묶은 머리다발 끝에서 물방울이 목덜미로 떨어지는 것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열심히 할게요, 엄마.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품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했다.
두 다리 쭉 펴고 하나. 머리 숙이며 둘. 두 팔은 귀 뒤에. 넷, 점프! 여자는 다이빙대 위에서 떨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힘껏 밀어버렸다.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 여자는 그 말이 내 미간을 저절로 찌푸리게 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컴퓨터를 켜고 K2블로그로 향한다.
스테파노가 다녀간 모양이다. 메인보드에 올려놓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 밑의 덧글을 클릭한다.
아버지가 잘생기셨다. 어머니가 반할 만하시다. 언제 어머니 사진도 올려봐라. 그땐 아버지의 사진처럼 거꾸로 올리지 말길. 거꾸로 된 사진을 보느라 꽤나 목이 아팠다. 10:02 스테파노.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찍은 것이다. 사진관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엄마는 아버지에게 화장을 해주었다. 숱이 드문 이마 쪽으로 가지런히 머리칼을 내려주고 거무튀튀한 아버지의 얼굴 위에 분첩을 토닥였다. 두 눈썹에 검은색 아이펜슬로 숱을 채워 넣었다. 입술에 붉은색 루주를 아주 약하게 펴 바르자 완연한 병색이 조금은 가시는 듯 보였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며 곱다, 곱다, 연신 중얼거렸다.
스테파노, 그때 엄마는 정말 아버지의 얼굴이 고왔던 것일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안부게시판을 클릭한다.
K2라기에 산악동호회인 줄 알았답니다. 둘러봐도 산은 없는데 산속처럼 춥네요. 처음 방문 기념으로 사진 하나 퍼드리고 가요. K2봉이 있는 카람코람 산맥의 사진이랍니다. 마음에 쏘옥, 드시길. 14:08 쁘띠.
우연한, 랜덤방문자치곤 꽤나 수다스럽다. 아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제 블로그 홍보에 열을 올리는 블로거일 것이다. 그러나 쁘띠의 초대는 뜻밖이다. 이제껏 내게 너그러웠던 블로거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K2블로그에 다녀간 사람들은 대부분 산과 무관하지 않다. K2라는 이름 때문이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K2블로그는 여행과 취미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으며 그로 인해 방문자 대부분이 산과 관련된 블로거들이라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는다.
보아하니 사연 많은 사람? 나, 산에 간다. 안 좋은 감정이 있으면 내 배낭에 쑤셔 넣어라. 대신 버려 줄 테니. 10:20 산사의 풍경소리.
대체 무슨 블로그가 이 모양이냐.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블로그에 부모 욕이나 하고. 너 같은 자식 낳을까봐 결혼 안 할란다. 22: 38 국밥.
단지 몇 줄의 글을 읽는 수고로움만으로도 K2블로그가 어떤 곳인지를 단박에 깨닫게 된 블로거들이 남기고 간 덧글 또한 내겐 새삼스러울 것 없다. 일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므로. 하지만 스테파노의 왜 K2인가, 하는 물음은 쁘띠의 초대처럼 뜻밖이었다. 그제야 아무도 내게 그렇게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스테파노의 질문에 K2는 같은 성씨의 내 부모를 일컫는다는 덧글을 달았다.
그렇다면 당신도 K이다. 적어도 K3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K2인 까닭은 무엇인가. 19:08 스테파노.
당신은 누구냐고 스테파노는 내게 묻고 있었다.
-너는 우리에게 자식 이상의 의미야. 그걸 모르겠니?
내가 먹은 온갖 종류의 약들은 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잠복해 있을지 모를 어떤 병적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때론 위벽이 헐었고 장이 탈을 일으켰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건넨 약사발을 받아들 때마다 혹은 알약이 든 불투명한 약봉지의 윗부분을 찢어내면서 나는 차라리 병들고 싶었다. 기형의 얼굴로 피가 멈추지 않는 몸의 어딘가를 보란 듯이 내밀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그들의 불안이 끊임없는 집착으로 환원되는 매 순간들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주기적인 종합검진 결과는 늘 정상이었다. 그 날 하루만큼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들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목덜미가 써늘해졌다. 나는 나일 수 없었다. 그들의 사랑이 온전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로서 존재해야 했다. 나는, 내가 오로지 나여야 하는 이유와 내가 나만일 수 없는 이유 사이에서 부대꼈다. 끝내 찾을 수 없는 병든 유전자에 대한 그들의 집착처럼 나 또한, 나를 나이게 만드는 단 하나의 유전자에 대해 집착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내가 K2블로그를 만들었다고 스테파노에게 덧글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K2블로그에 스테파노가 다녀갔다.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었을 때 산은 늘 내 발바닥에 있었다. 내 발바닥은 이제껏 올랐던 산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K2블로그에는 산이 없다. 그러나 당신이 이곳에 쏟아놓은 비명소리와 저주와 욕설은 산의 거친 살갗처럼 내겐 익숙하다. 그래서 이곳에 다녀가면 산에 올랐던 것처럼 마음 어딘가에 물집이 잡히고 상처가 남는다. 16:42 스테파노.
스테파노는 덧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부려 두었다. 사진파일을 클릭하자 산이 열렸다. 멀게 보이는 산은 보기 좋은 피라미드 모양이었다. 저기 어디에 험준한 산등성이가 있을까, 싶었다.
산사나이들은 동료들이 크레바스(crevasse)에 빠져 숨질 경우 주검을 건지지 않고 그냥 둔다. 하지만 그 주검은 등반 루트 가까이에 있었다. 휴먼원정대는 8000미터 고산에서 주검을 회수하는 등반사 최초의 프로젝트였다. 자칫 살아있는 생명과 맞바꿀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두 구의 주검을 산에 남겨둔 채 말이다. 그들은 부르튼 입술과 거칠어진 살갗 혹은 동상이 걸린 몇 개의 발가락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흐느낌이 길다. 11:23 스테파노.
스테파노의 덧글을 읽으며 나는 문득, 엄마가 신문의 낱장을 가벼이 들추며 간간히 혀를 차던 모습을 떠올렸다.
-쯧쯧, 그토록 애썼건만. 기어코 산이 품어버린 모양이야. 죽은 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얼어 죽은 시체가 아니야. 산인 거야. 산이 품어버린 것은 모두 산인 거거든. 그런데 말야, 너. 이 달 초아흐레가 아버지 기일인 거 잊지 않았지?
새 모이는 꼭 챙겨야 한다고 말한 뒤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새로운 산행일지를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며칠 전부터 엄마는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의 기일은 잊고 있었던 나는 기일과 겹친 엄마의 산행이 난데없고 당황스럽다. 내가 아버지의 기일마다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엄마는 잊고 있었던 것일까.
먼지로 뿌연 사무실 유리창 밖을 내다본다. 둔덕이 멀고 희미하게 느껴진다. 재색비둘기 몇 마리가 그 위에 내려앉는다.
-허리 아파 죽겠다. 뭐에 삐쳤는지 며칠째 느이 아버지가 부리로 내 허리를 콕콕 쪼아댄다, 글쎄.
엄마는 죽은 아버지가 새가 되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아버지의 제사상에는 나물로 가득 채워지고 한쪽에는 새 모이를 담은 조그만 종지가 곁들여진다.
전선생이 가볍게 내 어깨를 친다. 나는 전선생의 불룩한 배를 내려다본다. 새가 된 아버지라면 봉분은 꼭 저만큼일 것 같다. 나는 전선생에게 오늘이 아버지의 기일이라고 말한다. 조금 일찍 퇴근해도 되냐고 덧붙여 묻는다. 전선생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수련관을 나오자 걸음을 늦춘다. 오늘 하룻밤을 지낼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괜한 바람만 잔뜩 분다. 검은 부츠 위로 먼지가 앉는다. 뒤에서 차의 경적소리가 들린다. 담 옆으로 바짝 붙어 걷는다. 베이지색 중형차가 내 옆에 멈춰 선다. 짙은 색으로 썬텐이 된 차창이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의 얼굴이 물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것 같다.
“밥 먹으러 가요, 우리.”
차 안에 은근한 향내가 감돈다. 흘끗, 여자의 옆얼굴을 훔쳐본다. 내게 음료수를 내밀던 때와는 다른, 어딘가 모르게 다부진 모습이다.
여자가 차를 세운 곳은 수련관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이다. 차에서 내려 잠시 난감해진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낼 요령이었지 여자의 집에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걷는다. 여자를 부를까 망설이다가 내킨 기분으로 따라 걷는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여자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주위를 둘러본다. 거실에 놓인 몇 개의 가구들과 거실 창 양옆으로 밀쳐둔 색다른 두 겹의 실크커튼, 바닥에 깔린 연한 핑크색 카펫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검은색 교자상 하나. 여자의 집에서 오래된 것이라고는 베란다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과 그녀뿐인 것 같다. 낯선 눈길이 불안한 듯 코카투는 새장 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방에서 나온 여자가 상 아래에 방석을 내려놓으며 편히 앉으라고 말한다.
“남편은 출장 중이고 때맞춘 것처럼 애는 여행을 떠났어요. 하긴 셋이 모여 있어도 우리 집처럼 조용할까. 이 주 전인가, 바로 아래층에 새 사람들이 이사를 왔는데 고만고만한 어린 남자 애들이 둘이더라구요. 열 한 시가 넘어도 애들 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선생님, 그거 알아요? 나는 그게 싫지 않아요.”
부엌으로 간 여자의 뒷모습이 부산스러워 보인다.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코카투는 박제처럼 조용하다. 여자가 여러 번 음식을 나른다. 둘이 먹기엔 양과 종류가 많은 상차림이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속이 더부룩해진다. 여자가 내 앞에 밥그릇을 내려놓고는 마지막 쟁반, 외치며 마주 앉는다. 밥은 쌀알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잡곡이 섞여 있다. 여자가 젓가락을 쥔 채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주춤거리며 젓가락을 들었지만 정작 팔을 뻗지 못한다.
“잡곡밥 싫으세요? 이를 어째. 잠깐 기다리실래요, 쌀밥 할게요. 금방이면 돼요.”
일어서려던 여자에게 서둘러 손사래를 친다. 여자가 다시 앉으며 어색하게 웃는다.
“불편하신가 보다. 그러실 것 없는데. 그냥 밥 한 끼 대접하려고 그런 거예요. 이왕 그럴 거면 내 집에서 하자, 그런 건데. 혹시 그때 일 때문에 그런 거면 그냥 잊으세요. 나도 가끔 남편을 밀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다 큰 애지만 등짝을 후려치고 싶을 때도 많고요. 그 심정……, 말로 표현하기는 뭣한데 그럴 때 있어요.”
문득 생각난 듯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용도실에서 나온 여자의 손에 천주머니가 들려 있다. 여자가 새장 문을 연다. 코카투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여자는 주머니 안에서 꺼낸 것을 새장 안의 먹이통 안에 부려 놓는다.
“사랑해, 사랑해.”
여자의 목소리로 코카투가 말한다. 새장 문을 닫아걸고 여자는 창살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친다. 그리고 어서 먹으라고 말한다.
주머니를 든 채 여자가 내게로 걸어온다. 상 위에 주머니를 내려놓고 여자가 수저를 든다. 그때 인터폰이 울린다. 통화를 마친 여자는 내게 잠깐만요, 말하고는 현관문을 나선다.
상 위에 놓인 주머니를 내 앞으로 가져와 그 안을 들여다본다. 향긋한 냄새가 난다. 새 전용 인공사료가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주머니를 들고 일어선다. 내가 다가가자 코카투는 다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새장 문을 조심스레 열고 움켜쥔 작은 알갱이들을 통 안에 넣는다.
“사랑해? 사랑해?”
흠칫 놀라 나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요.
언젠가 여자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돌아온 여자가 편지봉투를 상 위에 내려놓고 밥을 먹는다.
“저 새는, 그러니까……저 새가 하는 말…….”
“사랑한다는 말?”
여자는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한다. 나는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본다.
“놀라셨어요? 언젠가 내가 말했는데. 그런데 선생님. 쟤, 참 예쁘죠?”
나는 입을 다문다. 여자는 허기진 듯 밥을 먹는다. 한쪽 볼이 불룩하다. 밥을 먹는 여자의 얼굴 위로 자꾸만 새장 앞에 선 그녀가 어룽댄다. 코카투에게 먹이를 주며 여자는 끊임없이 물었을 것이다. 사랑해? 날……사랑해? 코카투가 자신의 목소리로 되묻는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은 채 말이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코카투는 먹이통에서 조금 떨어진 채 가만히 있다.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코카투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밥을 먹고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을 우물거리며 여자가 나를 쳐다본다. 여자는 쥐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접시 몇 개를 내 앞으로 옮겨놓는다. 많이 드시라고 여자가 내게 말하며 웃는다. 울컥, 목이 멘다. 물을 마셔보지만 부질없다. 뾰족한 것이 자꾸만 두 눈가를 콕콕, 쪼아댄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눈물이 많다고 여자에게 말한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자에게 인공사료 말고 새 모이를 할 만한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다.
“새 기르세요?”
계단을 내딛으며 현관문을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현관문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잠시 다녀오마. 궁서체로 쓰인 문구가 덧붙여 있었던 분홍색 하트 모양의 포스트잇을 떠올린다.
열쇠를 꽂고 손잡이를 비튼다.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등이 켜지고 늘 그렇듯 열심히 살자, 라는 문구가 보인다. 쇼핑백을 내려놓고 거실 벽을 향해 걷는다. 실내등이 꺼진다. 더딘 걸음으로 걸어가 거실 벽을 더듬는다. 하드보드지의 귀퉁이를 찾는다. 각진 모서리에 손톱 끝을 드민다. 조금씩 틈을 벌린다. 벌어진 틈으로 손가락 두 개를 넣자 벽에 붙은 하드보드지 한 쪽이 들뜬다. 나는 힘껏 하드보드지를 떼어낸다. 보지 않고도 거뜬히 그렇게 살아낼 일이라고 중얼거리며 거실 불을 켠다.
쇼핑백 안에서 세 개의 베주머니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주머니를 연다. 새 모이를 조금씩 덜어내 종지에 담는다. 나는 베주머니를 옆으로 밀쳐두고 카메라를 든다. 세 개의 종지가 액정화면에 가득 차도록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셔터를 누른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K2블로그로 향한다. 나는 다시 한 번 카메라의 액정화면을 들여다본다. 화면 속에 세 개의 종지가 또렷하다. K2블로그로 사진을 옮긴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 밑에 새 모이가 담긴 세 개의 종지가 놓인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새가 된 아버지가 뾰족한 부리로 내 눈가를 콕콕 쪼아댄다.
안부게시판의 N(new)표시가 깜박인다.
스테파노가 다녀갔다. 아버지의 기일이라는 짤막한 문구 아래 사진이 있다. 사진을 클릭한다. 음식이 즐비한 제사상이다. 나는 스테파노가 두고 간 사진 밑에 덧글을 단다.
스테파노. 코카투가 내게 묻는다. 사랑해? 사랑해?라고 아버지가 내 목소리로 묻는다. 새 모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만 내게 묻는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