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오리엔탈리즘 코웃음만...
△감독 롭마샬·출연 장쯔이 공리 양자경
아무리 ‘지구촌’‘세계화’의 구호가 낯익다지만, 동·서양의 사고방식과 문화차이는 여전히 완고하다.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단편적인 시각은 헐리우드영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헐리우드에서 만날 수 있는 동양인과 동양문화는 가난과 전쟁, 어수룩한 돈벌레, 왜소한 몸집, 삼합회·야쿠자같은 조폭문화 등이 고작이다. ‘동양여성들에 대한 판타지와 페티시즘’도 장르를 불문하고 두루 차용되는 아이콘이다. 무엇보다 헐리우드영화(또는 헐리우드의 동양문화에 대한 시각)가 저지른 최대실수는 ‘동양문화=일본문화’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헐리우드가 동양을 묘사할 때마다 우리 관객들이 코웃음을 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고, 아카데미상 6개부문 석권에 빛나는 ‘시카고’의 롭 마샬이 연출한 ‘게이샤의 추억’. 일본문화를 상징하는 3대 아이콘(사무라이·야쿠자·게이샤) 가운데 포르노그래피적 환상으로 물든 게이샤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최고의 게이샤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베일에 싸인 게이샤의 화려한 세계를 세밀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게이샤들이 전쟁이후 미군기지의 매춘부처럼 변해가는 모습도 그린다. 얼핏 보면 사라져가는 게이샤에 대한 만가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게이샤를 통한 서양인들의 대리만족에 가깝다.
드라마는 부족하지만 스크린의 색감과 질감 만큼은 화려하고 풍성하다. 배경인 1930년대 교토의 퇴폐적인 유곽를 완벽하게 재현해냈고, 립스틱크기의 초소형카메라가 40㎝높이의 미니어처 건축물을 헤집으며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100% 수작업인 기모노를 250벌이나 제작했는가 하면, 자연광 대신 2500평에 달하는 세트에 실크천을 펼쳐 도쿄지역 특유의 평온한 햇살을 구현내했다.
‘사미센(일본전통악기) 연주부터 종종걸음까지’ 게이샤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들의 독특한 화장법, 남자를 사로잡는 갖가지 제스처, 처녀성을 바치는 의식 ‘마즈아지’, 혼탕에서의 유희 등 눈요기가 어지러울 정도다.
1997년 출간이후 뉴욕타임스 50주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아서 골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지만, 원작에는 못미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
공교롭게도 장쯔이, 공리, 양자경 등 중국계 월드스타가 나란히 게이샤로 분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헐리우드적 시각으로 이들 만큼 경쟁력이 있는 동양계 여배우가 없기 때문이다. ‘투명한 회색 눈빛, 눈에 구멍을 뚫어놓고 거기에다 잉크를 부어 말린 것 같은 눈’으로 묘사되는 장쯔이 보다는 공리의 표독스런 연기에 더 눈길이 간다.
‘왜색창연’한 영상을 위해 8500만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올해 아카데미상에 촬영·미술·의상·음악 등 6개부문 후보에 오른 ‘게이샤의 추억’은 시각적 효과에 비해 가슴 뭉클한 드라마는 빈약하다. 결국 감성에 치중한 블록버스터에 그친 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등 헐리우드 드림팀이 가세했음에도, 왜곡된 헐리우드식 시각과 일본문화에 대한 노골적인 애정이 뭉뚱그려진 범작이 됐다. 15세 관람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