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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영화] 이 영화 '음란서생'

"통하였느냐" 감춤과 내숭의 미학

영화 '음란서생' 에서 맛깔스런 음란함을 선사하는 세 주연 한석규와 이범수, 김민정. ([email protected])

△음란서생(감독 김대우·출연 한석규 이범수 김민정)

 

‘음란서생’은 영화의 행간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겠다. 연출자가 의도하는 영화의 행간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영화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그저그런 영화가 될 것같다.

 

창작에 대한 고통, 산고끝에 내놓은 작품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을 때의 쾌감, 현실에선 보잘 것 없지만 가상공간에서만큼은 만인지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망을 고스란히 녹여낸 영화가 ‘음란서생’이다.

 

당대최고의 문필가지만 소심하고 글밖에는 모르는 전형적인 책상물림인 윤서(한석규)가 ‘단군이래 가장 음란한 놈’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윤서는 위조된 서화를 찾아내라는 어명을 따르다 장안의 화제로 꼽히던 음란서적들을 만나게 된다. 평소에는 입에도 올리지 못했던 음란한 단어로 얼룩진 ‘빨간책’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는 윤서. 글쓰기라면 자신있었던 그는 아예 음란작가 ‘추월색’으로 변신한다. 왕의 후궁 정빈을 떠올리며 일필휘지로 ‘야설’을 써내려간다. 이렇게 완성한 소설을 출판업자 황가(오달수)에게 건넨다. 급기야 추월색의 ‘흑곡비사(黑谷秘事)’는 장안을 휩쓴다. 현실에선 겁쟁이에 불과했던 윤서는 음란소설계에서 만큼은 파격적이고 과감한 베스트셀러작가가 된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백면서생 윤서의 자아실현과 유행을 낳고 유행이 확대재생산되는 상업시스템에 대한 조롱이다. 윤서는 야설을 완성하기 위해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창작의 고통에 시름하면서도, 장안의 뜨거운 반응에 쾌재를 부른다. 음란소설계 일인자가 되기 위해 가문의 숙적(이범수)과도 손을 잡고, 자신을 흠모하는 후궁의 유혹도 물리치지 않는다. 독자들을 흑곡비사의 뒷장에 ‘댓글’을 달고, 추월색의 ‘폐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음란서생’은 음란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저급하지 않다. 무엇보다 맛깔스런 대사가 ‘감춤과 내숭의 미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흑곡비사에 빠져든 사대부 여인들이 책에 소감을 적으면서 “대꾸하는 글이니까 댓글이라고 해야할까나”하는 대사는 과거와 현재의 동시대성까지 겨냥한다. 한석규와 이범수의 대사도 압권이다. “말도 안되는 자세요, 누군가 분명히 이 책을 보고 따라할텐데. 어쩔 것이요”하자 “따라하지 말라고 책 맨 앞장에 써놓을게요, 그런데 이 자세, 해본긴 한거요”한다. 지체높은 양반들이 음탕하게 내뱉는 ‘하오체’의 대사는 또다른 유행을 낳을 것같다.

 

느릿하면서도 할말은 다하는 한석규를 비롯해 나올때마다 관객들의 배꼽을 잡는 출판업자 오달수, 화려한 궁중옷으로 치장한채 요부의 전형을 보여주는 김민정 등 배우들의 호연도 칭찬할만하다.

 

‘사대부의 위선적인 성문화 꼬집기’라는 초반부의 색깔이 워낙 강해서인지,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흡입력이 떨어지는 게 옥의 티다. 촌철살인의 풍자가 용두사미격으로 전락하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영화속 표현대로 신묘막측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웰메이드사극’이라는 데에는 이의를 달지 못하겠다.

 

‘음란서생’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휘어잡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혈의 누’-‘형사duelist’-‘왕의 남자’의 계보를 이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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