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은 독특한 영화감독이다. 헐리우드의 중심부인 LA 대신 전형적인 뉴요커의 자존심을 굳히지 않은 채 다분히 미국적인 영화를 개척해간다. 정신없는 슬랩스틱코미디와 엄청난 분량의 대사유머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작품성은 있지만 흥행은 실망스럽다’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오죽했으면 ‘헐리우드엔딩’(2002년)에서 ‘쪽박감독’의 아우라를 들춰냈을까.
그런 그가 변했다. 성공에 눈먼 한 남자의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다. ‘매치 포인트’(출연 스칼렛 요한슨·조나단 라이 메이어스). 세상의 속물들에게 특유의 독설을 퍼부어왔던 그가 통속멜로를 빚었다. 하지만 단 5분만 영화에 집중하고 있으면 ‘역시 우디 알렌’이라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 상투적이고 뻔한 결론인데도 여백과 관능이 스멀거린다. 영화보는 맛이 난다.
‘매치 포인트’는 말 그대로 매치포인트(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점수)의 외줄을 탄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이 어디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린다. 그 운명의 순간을 향해 영화는 드라마틱하게 질주한다. 전직 프로 테니스선수로 상류사회 여자를 디딤돌삼아 부자를 꿈꾼다. 하필이면 이 남자, 처남의 약혼녀 노라(스칼렛 요한슨)와 ‘위험한 관계’를 맺는다. 노라는 남자에게 집착하게 되고, 남자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부와 욕망이냐.
이렇게 우디 앨런식의 풍자극이 완성된다. 통속치정극 속에 숨어있는 철학과 위트를 찾아내는 재미가 솔쏠하다. 교양있는 부인과 매력적인 애인을 오가던 남자가 “둘다 사랑해, 다만 그 색깔이 다를 뿐이야, 한쪽은 사랑이고 한쪽은 욕망이야”를 뇌까릴땐 뒤통수를 한대 맞는 기분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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