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미술품시장 활성화 움직임...아트페어·경매·미술은행등 활력소 기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고급 문화에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화랑가에서는 미술품에 아낌없이 투자하려는 '벽지(wallpaper)세대'가 등장했다는 말까지 나돈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이야기일 뿐, 미술시장의 변방에 놓인 도내 실정과는 거리가 있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60∼70년대까지만 해도 전북은 미술시장의 본류에 있었다. 서울을 제외하고 서화류가 가장 많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지역이 전북이었다.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먹고 살기가 괜찮았다는 이야기다.
타시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중 전주에서 전시회 한 번 여는 게 꿈인 작가도 많았다. 중앙 부처에서 전북에 오는 높은 분들은 으레 서화 한폭씩을 손에 쥐고 가던 시절이었다. 전북에 기관장으로 재직하다가 타지역으로 발령될 쯤이면 수십점의 서화들이 화랑가로 쏟아졌다. 80년대 중반께 전주를 방문한 실세 장관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300여점의 작품을 모 화랑에 판매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됐다.
미술시장 여건이 훨씬 나아진 오늘날, 도내 화랑가에서 왜 과거의 영화를 떠올릴까. 생활이 나아지고, 미술인구도 크게 늘었으며, 화랑 숫자도 많아졌지만, 미술시장에서도 타시도의 성장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상대적 빈곤감이 크다는 의미다.
실제 도내 미술시장의 벽은 아직도 높고 단단한 성이다. 미술시장이라는 말 자체가 일반에 생소할 정도다. 미술품 구입자는 투자 목적의 수집가와 미술품을 좋아하는 몇몇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하면 극히 제한적이다. 전시회장을 찾는 인구조차 그리 많지 않다.
미술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내 미술시장 규모를 추산하는 것 또한 무리다. 미술품 매매는 화랑과 표구점을 통한 거래, 전시회장에서 구매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화랑이나 표구점의 경우 고서화류쪽에 중심을 두고 있고, 개인전을 여는 작가들의 작품은 친지가 주요 고객이다. 현존 작가들의 미술품 가격은 대개 작가가 가격을 매긴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원리가 미술시장에 적용될 여지가 그만큼 없다.
꽉 막힌 이런 도내 미술시장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아트페어전이 마련되고, 미술경매시장이 열렸다. 여기에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미술은행 사업이 전북도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병원과 정미소, 야외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갤러리 등장도 미술시장에 새로운 활력소다.
2004년 처음 시작된 전북아트페어는 전북미술협회가 주축이 돼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끄집어 내 대중과의 만남을 주선한 자리였다. 두 차례에 걸쳐 60여 작가들이 참여, 30% 정도의 판매율을 나타내며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소더비, 크리스티 등의 세계적 미술품 경매시장을 본 따 서울에서 시작된 미술품 경매시장의 열기도 지역으로 퍼지는 추세다. 서울에서 열리는 미술품 경매시장에 참여하는 도내 수집가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익산의 한 갤러리에서 직접 도내 작가들의 작품을 경매에 부쳐 미술품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화랑을 운영중인 솔화랑 서정만 관장은 "아트페어전이나 경매, 정부의 미술은행사업도 좋지만 미술을 좋아할 수 있게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관장은 서울의 인사동이나, 대구의 봉산동, 광주의 궁동 미술시장이 꿈틀거리는 것은 일반인과의 접근성을 높인 때문이라며, 전주시내에 고서화 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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