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에게 보내는 당부의 말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지나갑니다. 무료한 시간이 무섭게 흘러갑니다. 시간의 적막 속에서 속수무책,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아, 이 공포, 콘트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머물고 있습니다.’
2003년 3월 작고한 조병화 시인은 「편운재에서의 편지」 마지막 서신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내면의 소리가 날숨처럼 나왔다”며 생전 숨을 쉬듯 시를 써온 그 역시 죽음 앞에서는 ‘절필’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시인의 ‘절필’은 더욱 슬프다.
그러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경덕출판사)은 의외로 ‘일반인적’이다. ‘죽음’ 또는 ‘절필’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보다는 사랑하는 아내, 아들딸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말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큰애야, 엄마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명심하거라. 너는 엄마가 죽으면 너도 따라 죽겠다고 하더라마는, 나는 그런 말이 하나도 고맙지 않고 듣기도 싫다. 나 없으면 이제부터 네가 부모다, 너의 책임이 막중하다.”
소설가 공선옥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기어코 대학은 나와야 한다며, 만약 대학에 갈 형편이 안되면 평소 엄마와 친분이 있던 어른들을 찾아가라고 한다. 그들 명단까지 별첨해 놓은 ‘억척스러운 엄마’다.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 된다”는 한말숙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도, “나 먼저 갈 테니 당신은 천천히 즐겁게 살다가 뒤따라 오라”는 김학 전북대 평생교육원 교수도, 모두 지독한 사랑이다.
문인들의 공통된 유언은 조의금은 받지 말고 주검은 화장해 평소 좋아하던 장소에 뿌려달라는 것. 죽어서도 영혼만은 자유롭고 싶은 게 문인들인가 보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시인의 의자와는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황금찬 시인을 비롯해 구상 문효치 피천득 이해인 도종환 등 가상유언장을 남긴 101명의 문인들은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이들이다.
그러나 인생의 외길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사람들! 가상유언장을 쓰는 것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경건의 깊은 구도’와 같다.
오늘을 ‘내 남은 생의 첫날’로 여기고 가상유언장을 써보는 건 어떨까. 물려줄 재산도 남길 말도 없다면, 오늘부터 더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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