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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봄에 쓰는 일지·넷째 날 - 곽진구

봄날에

 

아이가 차올린 공을

 

그 작은 공을 별이라 부릅시다

 

그리고

 

밤마다 그 별이

 

색색거리고 잠든 아이의 볼에 입맞춤할 때

 

희망이라 부릅시다

 

십 년 혹은 이십 년 후, 아이가

 

피로에 지친 얼굴로 실의에 빠질 때

 

아이의 거친 손을 꼬옥 잡고

 

옛날 힘차게 공을 차올린 공터에 나가

 

이렇게 말합시다

 

“아가야, 별은 죽지 않는 거란다.

 

다만, 늙어가는 것 뿐이란다.”

 

- 시집 <사는 연습> 에서

 

 

하늘에 차올린 그 작은 공을 ‘별’이라 부르자

 

가령 이 작품의 제목이 ‘겨울에 쓰는 일지’ 이거나 첫 행이 ‘봄날에’가 아닌 ‘겨울에’로 시작되었다면 그 느낌이 어떠했을까? ‘희망’을 내세우는 전체적 분위기에 반한다 그리고 힘껏 차올린 공을 ‘별’이라 부른다거나 또 밤마다 그 별이 ‘잠든 아이의 볼에 입맞춤’ 한다는 별의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는 화자 개인의 진술이면서도 ‘-부릅시다’, ‘-말합시다’ 등의 청유형 어미를 넣어 이 작품을 읽는 모든 이에게 풋풋한 희망을 공유케 하고 있다. 이 작품의 대미는 역시 끝 두 행이라 할 것이다. 피로에 지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아이의 손을 꼬옥 쥐고 옛날의 공터에 나와 ‘별은 죽지 않는 거란다’ 라면서 다시금 용기를 넣어주는 모습은, 희망을 노래하면서도 절망까지도 대비한 詩적 기지라 아니할 수 없다.

 

/ 허소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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