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종이 넘기는 재미...감동은 여전
향토적 서정을 노래한 박목월, 민족정서와 전통에의 향수를 담은 조지훈, 시대적인 고난과 절망을 불멸의 생명력으로 초극하려 한 박두진.
‘광복 직후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한국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탁월한 시적 성취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청록파’로 불린 세 시인을 우린 아직 기억하고 있다.
일제 말기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세 시인이 광복 직후 1946년 공동으로 펴낸 「청록집」(을유문화사)이 환갑을 맞아 다시 태어났다.
출판사는 60년 전에도 「청록집」을 펴냈던 을유문화사. 사실 작고한 시인들의 책을 펴내는 것은 출판사에게 그리 큰 장사가 못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시 펴내는 것은 문학적 자산을 지켜가고 싶어하는 역사있는 출판사의 사명감일 것이다.
독자들에게도 이 책을 다시 읽는 감동은 여전하다.
일반적으로 「청록집」에서 알려진 시는 ‘청노루’와 ‘승무’ ‘낙화’ ‘도봉’ 정도. 학교에서 공부했던 시, 저편에 남아있던 시들을 이제라도 찬찬히 읽어볼 때다.
소장 가치도 크다. 뒷편에 「청록집」 초간본 원문을 수록해 놓아 누런 종이를 넘기는 재미에 자꾸 앞장보다 뒷장을 기웃거리게 된다.
문득 시인의 얼굴이 궁금해 진다면 72쪽을 펴보아라.
향토성 짙은 토속어로 선명한 이미지로 섬세한 내면을 형상화한 박목월은 파이프를 입에 문 말끔한 모습이 영락 없는 예술가이며, 전통문화를 소재로 절제된 율격미를 유지하며 민족적 정서를 담아낸 조지훈은 검은 뿔테 안경과 미간에서부터 굳게 다문 입 언저리까지 무게감이 느껴진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해 산문적인 문체로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를 노래한 박두진은 외모만으로는 왠지 셋 중 가장 개방적이었을 것 같다.
「청록집」 출판기념회 사진과 이듬해 박두진의 시집 「해」 출판기념회 사진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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