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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세계소리축제] 가얏고 12줄에 얹혀지는 음화(音畵)

가야금 산조에 대하여

가얏고 12줄에 스며 든 우리의 가락은 가을날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리기도 하고 빠알간 동백꽃처럼 정열에 타오르기도 하며 난초와 같이 우아하며 청초하게 우리의 심상을 적신다.

 

우리 음악 모든 것이 세계문화유산이겠지만 산조 또한 종묘제례악이나 판소리 못지않은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명품중의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산조 한 바탕을 연주하는 시간이 한 사 오십분 정도 걸리는데 이 한바탕을 제대로 들으면 우리의 생활속에서 느껴지는 모든 느낌이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조급증을 내었는지 선사(禪師)의 법문이 이 산조 가락 속에 무언의 울림으로 불려지는 무상게송(無常偈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산조 한바탕 듣고 나면 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산조가 삶의 지침서이자 명상음악인 셈이다.

 

사람의 외모나 성격이 다 다르듯이 산조에도 연주자의 성격이나 심상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데 이렇게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유형화 한 것이 류(流)다.

 

바둑에서 고수들의 스타일을 보면 조훈현은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이란 말대로 일거에 형세를 휘어잡고 불길처럼 일어나는 스타일이고, 조치훈은 입에 단도를 물고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창호는 강태공처럼 천변만화를 등 뒤로 흘려보내며 무한한 인내력으로 때를 기다리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가야금 산조에도 각기 연주 스타일이 있는데 성금연 명인은 정갈하면서도 감칠 맛나게 타며 김죽파 명인은 가락 하나마다 정제된 역동성이 느껴지게 탄다.

 

최옥삼 명인의 가락은 고려청자처럼 음빛깔이 아름답게 타며 김병호 명인은 제도적 틀을 무시하며 가락을 손에 쥐고 농락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제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가야금 산조의 유파를 헤아려 보면, 성금연류, 김죽파류, 최옥삼류, 김병호류, 강태홍류, 서공철류, 유대봉류등이 있다.

 

19세기 말엽 산조의 출현은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어 놓았다.

 

일제강점기 들어 암울한 시대를 맨 눈으로 쳐다보기 싫어 가야금 산조를 타면서 시대를 탓하고 마음의 울분을 털어낸 것이 여기 저기 호응을 받아 가야금은 가야금대로 이 가락 저 가락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거문고, 대금, 피리, 아쟁산조 등으로 점차 넓혀져 갔다.

 

독주곡으로 출발한 산조음악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그 어떤 명인도 메울 수 없는 깊고 넓은 음악 샘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 샘에서 마음껏 가야금으로 놀았던 그 명인은 이제 밤하늘에 빛나는 각자의 별이 되었지만 그 후예들이 이제 더 넓어진 그 음악 샘에서 '도옹지 찌징도옹 당'하면서 이 시대 사람들과 아름다운 음악꽃을 피워가고 있다.

 

/주재근(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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