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4 06:50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읽고 싶은 이 책] '꽃의 고요'

"황홀하고 서늘한 삶의 춤"...시인 황동규 전주서 쓴 시 '막비' 실어

‘2004년 7월 7일 새벽 3시 /전주 한옥 마을에서 정신없이 깨어 듣는 빗소리. / 왕뗏장 비구름이 도시 한 귀퉁이를 움켜잡고 놓지 않는지, / 한지 한 장씩 사이에 두고 두 빗소리. / 앞마당에선 한목소리로 계속 줄기차게 마당과 섬돌을 때리고 / 뒤울안에선 담에 부딪고 벽을 치고 / 간간이 종이창에 튀어올라 흐느끼기도 한다. / 두 소리 시시각각 간절하고 매몰차다. / 한 편에 귀 하나씩 내주다가 어느샌가 몸째 다 내놓는다.’ (황동규 시인의 ‘막비’ 中)

 

지난 주말, 황동규 시인이 전주를 다녀갔다.

 

그는 2004년 여름에도 무작정 전주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한옥생활체험관에 홀로 묵었던 그날 밤, 비는 내리고 그렇게 쓴 시가 ‘막비’였다.

 

‘참 오랜만에 막비를 막비로’ 맞았다는 시인은 올 봄 3년만에 내놓은 시집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에 ‘막비’를 실어놓았다.

 

열세번째 시집. 문학평론가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황홀하고 서늘한 삶의 춤’이란 해설을 썼다. ‘예술의 진경을 타개하려는 시인의 고투와 유한한 생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정신의 모험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언젠가 “옛날처럼 탁탁 튕기는 감각이 떨어졌으니 시를 쓰면 몇 개월을 묵히며 수십번 훑고 두고두고 발효시킨다”고 말했던 시인이 떠올랐다. 정갈하고 담백하게 읽히는 시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고뇌의 시간이 온축되어 있는 것이다.

 

‘시여 터져라. / 생살 계속 돋는 이 삶의 맛을 이제 / 제대로 담고 가기가 너무 벅차다.’는 시구절에 시선이 꽂힌다. 대체로 3년 주기의 규칙성을 지키는 시인의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혹시 다음 시집은 예컨대 지금 읽다 던지고 읽다 던지곤 하는 들뢰즈를 제대로 읽도록 하는 마음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되지나 않을지.” 시인의 말을 곱씹어본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