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서 입으로 전해온 우리 민족 고사성어...30년 수집...전북일보 연재도
“혼인날 신부가 폐백 자리에서 방귀를 뀌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무렴할까봐 “그거 복방귀다”라고 하니, 신부가 기뻐서 “저는 아까 가마에서 내릴 때에도 방귀를 뀌었어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이승만 정권때 나온 “시원하겠습니다”가 더 많이 쓰인다고 하더군요.”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와의 만남은 언제나 이처럼 유쾌하다. 익은말 덕분이다.
‘시아버지가 사위가 된 셈’ ‘선녀도 옷을 입어야 춤을 춘다’ ‘천석꾼과 만석꾼의 차이’ 등 그가 풀어놓는 익은말의 속뜻이 궁금해서라도 대화는 끊길 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윤택하게 해주니, 그것 또한 익은말의 가치다.
전북일보에 ‘재미있는 익은말’을 연재해 온 김준영 전북대 명예교수(87)가 「입에 익은 우리 익은말」(학고재)을 펴냈다. 설화를 정리한 책들은 종종 있지만, 익은말을 하나로 묶어낸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익은말이라 하면 대부분 낯설어하는데 고사성어(故事成語)라 생각하면 됩니다. 흔히 고사성어라 하면 중국의 옛 사람이 한 말이나 중국의 역사상 사건 또는 중국 문헌에 기록된 설화에서 이뤄진 익은말만을 일컫지, 우리 선인의 말이나 역사상 사건 또는 구전 설화에서 이뤄진 익은말은 고사성어로 취급하지 않는 게 보통이죠. 그러다 보니 고사성어가 된 우리 익은말은 문헌에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됐습니다.”
김교수는 “우리의 고사성어가 전하지 않는 까닭은 학자들이 같은 뜻의 말이라도 우리말로 표현하면 사상성이 없는 하찮은 말로 여기고 한자어로 표현하면 뜻이 깊은 말처럼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의 익은말이 문헌에 수록됐다면 지식층에서 그 말을 인용함으로써 널리 보급되고 고사성어가 되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중국에서 이뤄진 고사성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쓰면서도 우리 설화에서 우리말로 이뤄진 익은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사이에 거의 소멸됐습니다. 그나마 설화가 흥미있고 내용이 비유어가 된 것이 많이 전하고 있어 그런 것들을 모아 엮었습니다.”
익은말을 수집한 지 30년. 김교수는 연구보다 수집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1970년경부터 우선 문헌에 보이는 것들을 조사하고 주위에서 들은 것을 모아 오다가 90년경부터는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막걸리집이나 동네 노인정에서 종이 귀퉁이를 찢어 메모한 것들이 꽤 많은 분량이다.
“같은 익은말에 따른 설화라 해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지방에 따라 다르죠. 또 익은말을 쓰면서도 그 말의 근원설화를 모르는 경우가 있어 애로가 많았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익은말 360화는 문헌에 기록된 것보다는 구전된 것을 위주로 했다. 설화가 재밌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 익은말이고, 또 문헌에 기록된 것보다는 구전된 것의 설화가 더 실감나기 때문이다.
“익은말이야 얼마든지 더 있는데 내가 이만큼 밖에 수집을 못한 거죠. 언제 죽을 지도 모르고 우선 책으로 내놓고 보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매일 2∼3㎞씩을 걸으며 하루 3번 매실주를 꼭 챙겨먹는다는 그는 “앞으로도 내 삶이 계속될 때까지 익은말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시 진북동 우성아파트 106동 303호, 063-275-3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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