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숨 낮추고 말 꺼렸던 시간 지나 내놓은 윤대녕 소설집
“자정에 작업실에서 퇴근할 때면 막사발에 냉수를 받아놓고 아침에 출근하면 그것을 마셨다. 하루하루 그 일을 되풀이하면서 내가 과연 삶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나를 산짐승처럼 틈틈이 살폈다. 길을 잃으면 안되겠기에 보다 숨을 낮추고 되도록 말을 꺼렸다. 그렇게 생의 한가운데를 어두운 숲처럼 더듬더듬 관통하면서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때로는 작가의 말에 더 끌릴 때가 있다.
막사발에 하룻밤을 묵힌 냉수를 마시며 숨을 낮추고 말을 꺼렸던 시간들. 소설가 윤대녕이 3년 만에 다시 소설집을 냈다. 「제비를 기르다」(창비).
뛰어난 감성과 감각적인 서사를 특징으로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던 이전의 작품세계를 넘어, 삶의 지평을 향한 성숙한 시선이 담긴 이 책은 ‘윤대녕 단편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집’으로 꼽힌다. 소설가 신경숙은 “윤대녕스러운 것에 이미 얼마간 중독이 되어있는 이들에게도 중독자가 되길 잘했다는 은근한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몇 해 동안 여러 죽음의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그 중 한 죽음은 내게 너무도 뼈아픈 것이어서 그것을 덜컥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긴 세월 함께 몸부림쳤다.”
8편의 중단편이 묶인 이 소설집에는 여러 작품에서 죽음을 앞둔 인물이 등장한다. ‘탱자’ ‘제비를 기르다’ ‘편백나무숲 쪽으로’ 등 그러나 그 슬픔들은 슬퍼도 어둡지 않다. 죽음을 앞둔 주인공들이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단한 삶을 정화하는 순간과 만난다.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철마다 제비를 따라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술집 작부를 집에 들이기까지 한다. ‘여자란 모두 제비 같은 존재’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주인공의 연인도 떠났다가 돌아오곤 한다.
‘탱자’에는 열여섯에 첫사랑 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던 고모가 나온다. 결국 선생에게 버림받고 친정집 부엌데기로 살았던 고모는 첫사랑 선생과의 추억이 어린 배추밭에서 목놓아 통곡한다. ‘편백나무숲 쪽으로’에서 힘든 노동 끝에 병든 몸으로 옛 집으로 돌아온 화자의 아버지도 다시 떠나버린다.
제주도에 머물렀던 그가 서울로 돌아와 내놓은 소설은 작가가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절실하게 깨달은 후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믿음직스럽다.
‘‘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논란이 문단에서 가열한 이때, 또 한권의 책을 보태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윤대녕.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누군가 글을 쓰는 일이 계속돼야 한다면 독자들은 그가 되길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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