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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난 작가] 시인 이현수가 만난 시인 문태준

세상을 붙잡은 서정시인 마음의 아랫목을 내주다...따뜻하게 넉넉하게, 조금은느리게

문태준 시인이 도심 건물숲 사이 골목길에서 포즈를 취했다. ([email protected])

재작년 늦가을, 문태준 시인을 처음 만났다. 내가 조교로 있던 대학의 ‘작가 초청회’ 자리였다. 그날 저녁, 나는 시인에게서 술을 한 잔 가득 건네받았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내 시의 첫 구절을 기억하고 읊어주는 시인과 마주하고 앉았다. 분과 동아리 ‘시공간’의 시화전을 두루 살펴보다가 내 작품을 읽게 되었다고 했다. 조금만 더 힘내서 가면 될 것 같다는 시인의 말을 오랫동안 베갯머리에 놓고 살았다.

 

이번에 시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박성우 선생님 덕분이었다. 선생님께서 먼저 시인에게 전화를 넣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께 건네받은 연락처를 며칠 묵혔다. 혹여 뒤늦게라도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시인을 단 둘이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등단해서도 여전히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면 서명을 부탁했다.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책을 내밀면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도 즐거웠다. 물론 조금 창피한 줄은 알아서 그저 문학에 관심있는 학생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당연히 나를 알아보는 작가는 그동안 한 명도 없었다. 이런 내가 예전에 한 번 스쳤던 문태준 시인을 떠올리니 마음이 수런거릴 수밖에.

 

나의 우려와는 달리 시인은 흔쾌히 약속을 잡아주었고, 게다가 서울까지 먼 길 오려면 고생스럽겠다는 걱정도 덧붙여 주었다. 서울. 그랬다. 나는 서울에 가 본 일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촌스럽게도 혼자서 서울에 가는 일은 처음이었다. 세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약속장소까지 찾아가는 일이 제일 먼저 걱정됐다. 지하철을 탈 때에는 꼭 신발을 벗고 타야한다는 주변 사람의 농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시인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더 이상 서울에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반갑게 맞아주는 시인의 첫 인사는 밥은 먹었느냐는 것. 밥 먹었느냐는 그 말이, 참 뭉클하게 다가왔다. 시인과의 대화도 밥 먹는 일처럼 반갑게 시작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쓰는 서정시

 

이른 아침에 출발했지만, 점심시간을 넘겨서야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섞어가며 엄살을 늘어놓았다. 큰 고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낯선 동네에서는 뭐든 눈만 마주쳐도 덜컥 겁이 났다. 더구나 서울은 너무 큰 도시였다. 그 때문인지 시인이 이렇게 번잡한 서울에서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더욱 신기하기만 했다. 시에도 시인에게도 시골의 정겨움이 스며있던 터라 서울에서 서정시를 쓰는 것이 힘들지 않는지 여쭤보았다.

 

“어렵지요. 그래서 더 붙잡고 살려고 해요. 시골 고향집도 찾고, 집 근처에 있는 산길도 자주 거닐어요. 또 저녁이면 산에서 소쩍새며, 뻐꾸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더 귀 기울이고, 마음을 주려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시를 붙잡고 사는 것이 힘들어요.”

 

마음을 추스르고 달래가며 시심을 다잡다는 시인은 지난 강연에서도 그랬다. 항상 호주머니에 시를 넣어 다닌다고 했다. 가까이 두고 자주 살피지 않으면, 시도 쉽게 등을 돌린다는 시인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새벽, 그 무렵에는

 

시를 대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느슨할 틈을 주지 않는 시인. 여전히 저녁부터 새벽까지 글을 쓴다고 했다. 평소에도 수첩을 들고 다니며 메모를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시인에게 새벽은 어느 때 보다도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주로 저녁부터 새벽까지 시를 쓰곤 해요. 그 무렵의 시간에는 정신이 맑아지고, 귀도 밝아지는 것 같아요. 낮에는 들리지 않거나 너무 작았던 소리가 어느 순간 옆에 바짝 앉아있는 것을 보면 감사하죠.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풍경이나 사물이 고스란히 들어올 만큼 마음에도 넉넉한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고개 끄덕이며 듣고 있는데, 하지만 가끔씩은 빼먹을 때도 있다며 시인은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는 풍경이나 사물이 잠깐 쉬었다 가는 동안 자신은 그저 옮겨 적는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낮췄다. 이러한 시인의 말은 세 번째 시집 「가재미」의 뒷표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낮과 밤과 새벽에 쓴 시(詩)도 그대들에게서 ‘얻어온' 것이다. 본래 있던 곳을 잘 기억하고 있다. 궁극에는 돌려보내야 할 것이므로.”

 

이처럼 조그만 것들에게 마음의 아랫목을 다 내어주고도 시인은 겸손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불편한 것은 없는지, 더 내어줄 것은 없는지 두루 살핀다. 이렇듯 시인은 사물을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되돌려 보낼 때까지 몸 상하지 않게 부단히 돌볼 것이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더딘 사람이라서……”

 

시인은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펴냈고, 그러는 사이에 굵직한 문학상도 연달아 받았다.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에 이르기까지 문학상을 하나씩 헤아리다 보면 시인의 부지런함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인을 자주 뵐 기회가 없으니 이참에 뒤늦은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반응이 역시 수줍고 조심스럽다.

 

“저는 더딘 사람이라서…… 반응도 느려요. 처음에는 항상 둔감해요. 하지만 뒤늦게 오는 부담이 더 오랫동안 있다가 가요.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연이은 문학상 수상에 대한 부담스러운 감정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마지막 말만큼은 제법 힘주어 말했다. 이어 최근 시에 대한 주변 반응은 좋고, 나쁨이 딱 반반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 쓰기보다는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며 또다시 무게를 실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적잖은 마음고생이 묻어났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더디고 느린 걸음이어서 쉽게 지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돌담에 낀 나무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곳을 찾아 나섰다. 시인은 큰 건물숲 사이를 익숙하게 빠져 나가더니, 골목길로 들어섰다. 오래 전부터 눈여겨봐둔 곳이었으리라. 그런데 나무 한 그루가 돌담 사이에 정확하게 끼어 있다. 담을 올려야 할 곳에 나무가 있었던 모양이다. 담을 올리기 위해 나무를 뽑아낼 수 없었던 주인의 고심이 엿보였다. 그 나무 앞에 시인은 섰다.

 

나는 여러 번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서울에 사는 서정 시인은 어쩌면 돌담 사이에 낀 이 나무와 같으리라고. 아니, 나무를 뽑아내지 않고 돌담을 올리는 주인의 심정과 같으리라고 말이다.

 

인터뷰에 사진촬영까지 마치고 내친김에 시인의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을 내밀었다. 첫 만남 때 받지 못했던 서명을 꼭 받으리라 마음먹었던 터였다. 시인은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트렁크를 받침삼아 날짜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제 막 등단한 나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고 적어주었다. 물론 내 이름 뒤에 ‘시인’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시인이라는 말이 어색했지만 시인의 서명본을 받아든 나는 뭔가 한 몫 단단히 챙긴 것 같아 든든했다. 하지만 불편하게 허리를 굽히고도 서두르지 않던 시인의 모습이야말로 더욱 더 마음을 넉넉하게 했다.

 

시인의 시에도 이러한 넉넉함이 있다. 나는 특히 미당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누가 울고 간다’를 자주 읽곤 했다. 눈으로 훑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서 읽었다. 시인의 시에는 소리를 불러들이는 힘이 있었다. 나직하게 읽다보면 호흡에도 고운 결이 생겼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여백을 감싸 안았다. 소리와 호흡까지 가다듬었으니 시가 어찌 혀에 감기지 않으랴.

 

‘밤새 잘그랑거리다 / 눈이 그쳤다 // 나는 외따롭고 / 생각은 머츰하다 // 넝쿨에 / 작은 새 / 가슴이 붉은 새 / 와서 운다 / 와서 울고 간다 //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 울고 / 갈 것은 무엇인가’(‘누가 울고 간다’ 부분)

 

 

느리게 걷기

 

시인은 인터뷰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입구까지 함께 해주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거듭 사양하고 시인은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며 천천히 걸었다. 다시 익산까지 먼 걸음을 해야 하는 나에 대한 배려였으리라.

 

지하철 계단을 내려오며 혹시나 하고 뒤돌아보니 시인은 여전히 그곳에 서있다. 동구밖길까지 배웅을 받으니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 훤할 수밖에.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을 빠져나오는 길. 서울은 여전히 나에게는 낯설 동네일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비우는 서정 시인이 살고 있다. 필경 지금도 그는 어느 조그마한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하여 느릿느릿 걷는 것조차도 잊었으리라.

 

어느 간이역에서 KTX를 먼저 보내기 위해 기차가 잠시 정차했다. 아예 멈춰선 것은 아니므로 나 역시 다시 출발하면 그만인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시인 문태준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處暑’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2000, 창작과 비평사), 「맨발」(2004, 창작과 비평사), 「가재미」(2006, 문학과 지성사)가 있다.

 

동서문학상(2004), 노작문학상(2004), 유심작품상(2004), 미당문학상(2005), 소월시문학상(2006) 등을 수상했다. 현재 ‘시힘’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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