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만복사지와 만복사저포기
조선 세조때 생육신중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알려진 금오신화를 집필하였다. 금오신화는 당대부터 희귀하여 문헌에 단편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육당 최남선이 1927년에 목판본 ‘금오신화’를 발견하여 잡지 ‘啓明’ 19호에 소개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이 목판본 금오신화는 1884년(고종 21년) 일본 동경에서 간행된 것으로 상·하 2책으로 되어 있는데 상권에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등이, 하권에는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이 수록되어있다. 하권의 끝에 ‘갑집(甲集)’이라는 기록이 있어 본디는 5편 이상의 작품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복사저포기는 남원 만복사지를 무대로 하고 있다. 남원에 사는 양생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 동쪽에 있는 방 1칸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짝을 찾지 못하였다. 젊은 남녀가 만복사에 등을 달고 복을 비는 날 저녁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과 저포 놀이를 하여 놀이에서 이긴 양생이 아름다운 처녀를 얻어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처녀와 헤어진 양생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상례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나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과 인연을 맺었음을 알게 되었다. 처녀의 혼령이 나타나 양생에게 불도를 닦도록 권하였는데 양생은 그녀를 그리워하며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았다고 한다.
만복사지는 발굴조사를 하고 경내를 정비하였는데 석탑, 당간지주, 불대좌, 석불 등 4점의 보물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는 만복사의 서쪽 법당에는 35척의 동불이 있었다고 하는데 보물로 지정된 불대좌는 이 동불을 모신 것이다. 만복사의 동쪽 방에 기거하던 양생이 저포놀이를 한 부처님이 이 동불인지 아니면 현재 보호각내에 모셔져 있는 석불인지는 불대좌와 석불이 모두 고려 문종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다만 석불이 중생의 어려움과 소원을 들어주는 아미타불이고 그 뒤쪽에도 중생의 질병을 다스리는 약사여래가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문도 실은 부질없는 것이고 춘향전의 무대인 광한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춘향전과는 다른 사랑이야기의 배경인 만복사지를 양생이 소원을 빌었던 시기인 요즘 찾아가 소원을 빌어 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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