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우리는 못나게시리 오누이끼리 싸운거야. 호랑이한테 서로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누나는 동생을 호랑이한테 떼다밀고 동생은 누나를 떼다밀고…."
지난 5월 별세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단편 동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가 그림책으로 나왔다.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선생이 독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에 민족의 비극 6.25를 소재로 쓴 작품.
부모, 형제와 피란길에 올랐다가 폭격을 맞아 죽은 아홉 살 곰이와 국군이 쏜 총탄에 목숨을 잃은 인민군 오푼돌이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쟁의 실상에 대해 간절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화가 이담이 왁스 페인팅 기법으로 그린 장중한 그림은 이야기에 실감을 불어넣는다.
고요한 달밤, 치악산 골짜기에서 귀밑 뒷머리에 핏덩어리가 엉겨 있는 곰이와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오푼돌이 아저씨가 부스스 일어난다.
둘은 하얀 둥근 달을 바라보며 30년 전에 떠나온 고향과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등을 소재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곰이는 "전쟁을 피해 달아나려 했는데도 전쟁은 우리 뒤를 금방 따라온 거예요. 살려고 갔는데도 난 죽은 거예요"라고 절규한다.
오푼돌이 아저씨는 왜 국군과 싸웠냐는 곰이의 질문에 "인민들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 뿐이었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들의 대화는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속이고 살아남은 오누이로 옮겨간다.
곰이가 할머니에게 예전에 들은 이 옛날 이야기를 꺼내자 오푼돌이 아저씨는 우리는 오누이끼리 싸우다 모두 죽었다고 말하며 가슴을 친다.
호랑이와 오누이 이야기는 권정생 선생이 바라보는 6.25에 대한 본질이기도 하다.
권정생 선생은 타계 열흘 전 출판사 편집부로 보낸 육필 편지에서 "의미 없는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아무도 위로하지 않을 때 그 희생자들을 따뜻하게 덮어 주었던 '흰 눈'을 생각하면서 동화를 썼다"고 밝혔다.
'오푼돌이'라는 이름 속에는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한 결국은 양쪽 모두 반쪽이 신세에 불과하다는 선생의 따끔한 일침이 담겨있고, '곰이'라는 이름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약삭빠른 여우처럼 잇속을 차리는 게 아니라 곰처럼 우직하고, 순박한 심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보리출판사는 이 책을 시작으로 '평화발자국' 시리즈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48쪽. 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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