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감사원이 문화재청의 경복궁 복원사업을 감사한 결과 수입 소나무를 대량으로 사용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당시 감사원 관계자는 "경복궁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재인 만큼 국내산 소나무를 사용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감사원 관계자는 국내에는 궁궐 재목으로 쓸만한 소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관계자의 단견은 2002-2004년 경복궁 근정전 보수 공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근정전의 주기둥 4개 가운데 온전한 것은 소나무를 쓴 단 1개에 불과했다. 전나무 기둥 3개는 모두 썩어 있었다. 고종4년(1867) 경복궁 중건 당시 고작 11m짜리 소나무를 구하지 못해 강도가 한참 떨어지는 전나무를 쓴 결과였다.
140년이 흐른 오늘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06년 12월 철거를 시작한 광화문은 현재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새 건물만 들어서면 되는데 문제는 복원 공사에 쓸 소나무를 구할 방도가 없다는 것.
광화문 복원에 필요한 소나무는 지름 80-120㎝, 높이 8-9m 정도가 돼야 한다. 국내에 이 정도 크기의 소나무가 밀집해 자라는 곳은 강원도 삼척 준경묘(조선 태조 이성계의 6대조 이양무의 묘) 일대 소나무 숲이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2006년 말 준경묘 일대 국유림의 소나무 20여 그루를 광화문 복원에 쓰기 위해 벌채를 시도했으나 준경묘 봉향회,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환경단체, 지역주민 등의 반대에 부딪혀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은 "광화문 복원만 역사적 의미가 있는가. 준경묘 소나무 숲도 그에 못지 않은 가치가 있다"며 "산림파괴를 막기 위해 준경묘 소나무 숲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 준경묘 봉향회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문화재청장 앞으로 탄원서를 보내 "650년 동안 조상 대대로 가꾼 소나무를 베어갈 수는 없다. 그곳은 500만 전주이씨의 성역"이라며 반발했다.
문화재청도 지역주민의 반대에 일리가 있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준경묘 소나무숲은 너무 빽빽하게 나무가 들어서 있다. 소나무 재선충병에 취약하고 간벌차원에서도 어느 정도는 베어내는 게 숲의 생태에 바람직한데 너무 정색을 하고 반대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준경묘 소나무 사용이 어려워지자 문화재청은 산림청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산림청을 통해 쓸만한 재목을 구해보려는 시도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문화재청 엄승용 문화유산국장은 "산림청도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며 "인적이 거의 닿지 않은 산 속이라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거기서 찾아내면 어떻게 운반해야 하나? 헬기라도 동원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엄 국장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적어도 기둥하고 대들보는 국내 소나무를 쓰고 싶었는데 이러다가 100% 외제 광화문을 짓게 생겼다"며 타는 속을 내비쳤다.
준경묘 소나무를 쓰자니 지역 주민의 반대가 거세고 외국 소나무를 쓰자니 비판 여론이 일 게 눈에 보인다. 문화재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구르는 사이 2009년 말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벌목 작업은 나무 줄기에 수액이 적은 겨울이 적기다. 올해 겨울까지 벌목을 마치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2008년 겨울에나 찾아온다. 이 경우 2009년말까지 광화문 복원을 끝낸다는 계획은 어긋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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