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조선시대 박상연 작품 '해의국사'
"해의국(海衣國)은 서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땅은 넓이가 9만여리로 천지처럼 광활하다. 천자는 성이 장(張)씨, 이름은 첩(貼), 자는 속지(束之)인데 자칭 짐(朕)이니 태고적 혼돈씨의 후예이다."
"(짐은) 서남쪽 바다에 도읍을 정하고는 물(水)을 으뜸으로 삼고 검은 색을 숭상하며 여섯 숫자로 기원을 삼았다.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썼는데, 이 때부터 짐 천자의 영향이 사해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이름이 널리 퍼졌다."
작자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 해답은 짐이 다스리는 해의국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직된 토벌대 구성에서 드러난다.
"곽동(미역)을 복파장군으로 삼았으며, 황각(黃角)ㆍ청각(靑角.해초의 일종)은 좌우 종사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다사마(多士麻.다시마)를 표고장군으로, 우모(牛毛.우뭇가사리)를 전봉도독으로, 고발(高勃)을 후장군으로, 갈발(葛勃)로 기병을 삼았다. 이때 곽동이 가사리(佳士里)를 기실참군으로 삼으니 이가 곧 수염이 아름다운 염참군(髥參軍)이다."
이처럼 해조류인 김을 의인화한 독특한 17세기 조선시대 가전체(假傳體) 소설이 발굴됐다.
한국 고전산문 전공인 유권석(39) 선문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는 17세기 조선 중기 때 인물인 금곡(金谷) 박상연(朴尙淵.1631-1696)의 문집 '금곡집'(金谷集)에서 김을 소재로 한 가전체 소설인 '해의국사'(海衣國史)를 찾아내고 그 문화적 의미를 정리한 논문을 최근 발간된 한국언어문학회 학술기관지 어문연구 130호에 '해의국사'(海衣國史) 연구'라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유 박사는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의 가전 작품들을 살펴보아도 두부나 보리떡, 무 등의 먹거리를 소재로 삼은 경우는 있지만 김을 의인화한 작품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따라서 해의국사는 소재가 독특하다는 점 외에도 바른 정치를 꿈꾸면서도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심정과 문학적 역량이 잘 투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의국사는 박상연 사후 무려 280년 만인 1976년 전남 광주 평화당인쇄사라는 곳에서 석인본(石印本)으로 펴낸 금곡집(상ㆍ하 전 2권) 중 하권 '잡저'(雜著)에 수록돼 있다. 작자인 박상연은 숙종 시대 우암 송시열이 이끄는 노론이 득세하자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주유(周遊)하다가 경기도 양성에서 생을 마친 인물이다.
유 박사는 해의국사가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김을 한 나라의 천자로 설정하여 (박상연) 자신이 품어왔던 이상적인 군왕의 모습과 자신의 처지를 은연 중에 표출하고 있다"면서 "발음은 같으나 뜻이 전혀 다른 동자이의어(同字異義語)를 적절히 활용한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해의국(海衣國)이라는 상상의 나라 자체가 바로 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이곳을 다스리는 짐(朕)은 바로 구개음화 현상에 따른 '김'의 영호남 지역말인 '짐'을 말한다.
해의국사는 이런 '김'(=짐)이 다스리는 나라가 평화로운 시대를 구가하다가 '하순'(순채나물)이란 신하가 주도한 반란으로 혼란을 겪고 이를 수습한 뒤에 천자가 어부의 손에 죽어 초상 때 먹는 반찬이 되거나 스님들이 먹는 반찬이 되면서 멸망했다는 역사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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