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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ㆍ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고통ㆍ억압의 기억을 넘자

언어-소멸위기의 언어를 위하여 "특정 언어 강요는 정체성을 파괴..."

언어는 작가의 집이다. 언어가 소멸되고 있다.

 

요즘 지구촌에서는 2주에 한 개 꼴로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의 언어(영어)는 효율성의 이름으로 변방의 언어를 소리 없이 압박한다.

 

자연어가 소멸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언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역사적·공동체적 기억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거나, 그들의 삶이 다른 문화권에 흡수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하는 신자유주의의 작동원리는 언어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지구촌 시대에 발맞추어, 서로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언어에 내재된 고유한 사회·문화적 감수성이 매개되지 않은 왜곡된 언어 습득 열풍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언어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 보다는, ‘세계화’란 이름이 은폐하고 있는 야만적 기획의 전도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식민주의로 인한 언어적 위기와 분열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특히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를 경험한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에서 영어는 현재 가장 중요한 언어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아시아와 비교할 때 아프리카의 언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처럼 아시아·아프리카 소수 종족의 언어는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언어적 망명자들은 식민주의 언어와 모국어 사이에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언어가 희미해진 공동체의 기억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가, 혹은 소멸해 가는 종족의 언어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작가에게 제1의 조국은 언어이다. 언어는 작가의 사유와 내면을 지배하며,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내용물이다. 따라서 언어 선택은 전적으로 작가의 고유한 몫이며,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로 인해 작가에게 특정한 언어를 강요하는 것은 자아와 정체성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일이 된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보편 언어도 특수 언어의 파괴를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각각의 언어가 어떤 소통의 장을 마련하느냐가,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연대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이종(異種) 언어들이 상호 교섭하면서 만들어내는 이 어울림의 축제가, 고통과 억압의 기억을 넘어 희망의 씨앗을 잉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평론가 고인환씨 글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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