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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⑤익산의 문화일꾼 '소극장 아르테'

익산 문화예술 이끄는 여걸 3인방

익산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화일꾼들. 왼쪽에서 부터 박수양, 이도현, 김나영씨. ([email protected])

익산역 근처에 있는 '소극장 아르케'에 갔다. 아르케는 문화관광부의 '생활친화적 문화환경조성사업'에 선정되어 국고와 지방비의 지원을 받아 올해 완공된 소극장이다. 전체적으로 녹색을 중심으로 디자인하여 안정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풍겼다. 120여 석 규모의 공연장과 연습실, 분장실 전시공간 등을 갖추고 있는 연극전문 극장이다. 전주에도 이런 소극장은 없다.

 

이 극장을 짓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이도현(여, 39. 극단 작은소동 대표) 씨다. 원래 미술에 뜻이 있어 대학을 도예과로 진학하려 했으나 떨어지고 잠시 직장생활을 했었다. 몸이 아파서 직장생활도 금방 접고 우연히 지역극단에 들어가면서 시작한 연극생활이 벌써 20년이다. 그런데 여성은 주인공이 되어도 진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연극판의 보수성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친 김에 여성도 진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극단을 만들었다. 그 극단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작은소동'이다. 익산이라는 소도시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한 길로만 20년이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남성여고 다닐 때 학교축제를 했는데, 친구들이 '신의 아그네스'를 연출했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서울까지 올라가 원작을 보기까지 했습니다. 몸으로 표현하는 게 저한테 맞더라고요. 연극에 발을 디딘 후, 다른 건 한 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이것뿐이고요.” 마흔 줄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열정은 이십 대다. 20년 동안 돈 없이도 잘 해왔지만 요즘은 사람이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돈은 어떻게 하든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안 그래요. 원광대학교가 있지만 대부분 타지 사람이고, 몇몇 열정을 가지고 시작을 해도 힘드니까 그만 두거나, 더 좋은 여건을 가진 곳으로 떠나버리죠.” 어디나 사람이 문제다. 이 좋은 공간을 마련했어도 이곳을 쓸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콘텐츠가 채워지기도 힘들다. 그래도 좋단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몇몇이라도 다시 모여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모레면 '느지막한 신부'가 되는 그가 부끄럽게 웃는다. 외길로 익산의 연극판을 20년 동안 지켜온 열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빛낼 것이다.

 

이도연씨와 함께 아르테를 통해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가꾸어나갈 사람들. 김나영· 박수양씨가 그들이다.

 

김나영(36, 국악중심 연 대표) 씨는 남성여고와 원광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어려서부터 한국무용을 해왔는데 어쩌다보니 대학을 판소리 전공으로 들어갔다. 결국 대학원에서 다시 한국무용을 전공하게 되었고 채향순 교수를 사사했다. 2000년에 익산토박이들을 중심으로 타악하는 후배와 연극하는 후배들을 모아서 '연희단 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전용공간 하나 없었지만 나름 열심히 모여서 판을 짜고 공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들어 2002년에 해체를 하고 만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자신에게 부족한 게 많다는 성찰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2005년에 다시 '국악중심 연'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 하고 있다. "타악 전공자 2명과 판소리 전공자 1명, 그리고 저 이렇게 4명만 활동하고 있지만 그래도 문예진흥기금, 복권기금 등을 지원받아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후배들은 공연이야기를 하면 먼저 물어보는 게 출연료가 얼마냐는 거예요. 예전에는 사람이 좋아서 같이 한다는 것이 중요했었는데 요즘은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자신과 생각이 다른 후배들이 서운하긴 하지만 이런 문제는 어찌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정말 큰 문제는 지역에 있는 국악인 선배들이 후배들 앞길을 터주기는커녕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구조다.

 

"2005년 단체를 만들었을 때, 여러 명이 모여서 익산에서 국악학원을 크게 한 번 해보자고 의기투합을 했어요. 저를 비롯해 대부분이 원광대학교 출신들이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뒷이야기가 들렸어요. 몇몇 교수님들이 누구하고는 같이 일 하지 마라, 어디에는 참여하지 마라는 등 언질이 있었나 봐요. 그냥 무산되었습니다. 올해 개인발표회를 했을 때도 초대장과 팜플렛을 가지고 교수님들을 찾아갔는데 보는 둥 마는 둥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객원인력도 대부분 중앙대학교 인맥을 이용한다는 김 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문제가 어찌 그만의 문제일까 싶어서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박수양(36) 씨가 준 명함에는 체육과학대학 태권도학과 외래교수라는 직함이 새겨 있다. 발레를 전공한 그가 태권도학과까지 가게 된 사연은 조금 복잡했다. 광주여고를 나와 원광대에서 발레를 전공했고 중앙대에서 무용석사를 받았다. 광주시립무용단에서 2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익산으로 시집오게 된 것이다. 익산에 와서는 무용학원을 운영했다. 하지만 순수무용만으로는 학원운영이나 활동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재즈댄스를 배웠고 재즈댄스를 가르쳤다. 그러던 중 태권도를 만났고 태권도와 무용을 접목해서 '태권무'를 탄생시켰다. 태권무를 가르치기 위해 태권도 단증도 땄다. 지난 10월 무주에서 있었던 '웰빙태권댄스페스티벌'에도 참여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했다.

 

"태권도만 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지니까 훨씬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많은 운동효과를 누릴 수도 있고요.” 마치 전도사마냥 태권무의 장점을 말하는 그도 원광대 무용학과 출신을 모아 '쉬즈'라는 공연단을 꾸렸던 일꾼이다. '쉬즈'를 통해 진행한 중고등학교 순회공연만 해도 300여 회가 넘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을 그만두면서 공간이 없어지자 활동이 뜸해졌다. 소극장 아르케를 보자 이 공간을 이용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소극장 아르케가 익산 문화예술인력의 인큐베이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참 기분 좋은 예감이다.

 

/이경진 문화전문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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