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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⑨김제의 문화일꾼

지평선을 닮아 지평선에 남은 사람들

묵묵히 김제를 지키며 지역문화를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 왼쪽부터 이봉원 목사, 시민운동가 김익현씨, 시인 김유석씨, 김제신문 강주석 주필, 환경미술협회 박종한 회장. ([email protected])

징게맹게의 지평선이 김제의 전부는 아니다. 금산사와 귀신사를 거느린 모악에서 흘러내린 물은 악보처럼 흘러 만경강과 동진강의 젖줄이 된다. 지평선의 알곡을 살찌우고 신포와 망해사를 향해 흘러간 물들은 새만금의 아픔을 기억할 수 있을까. 없는 것이 없는 동네, 농도 김제의 문화일꾼을 만나러 가는 길에 '문광부 주관 지역축제 4년 연속 최우수 수상'이란 플랑이 붙어있었다.

 

김제의 자존심 지키는 통일운동가 이봉원목사

 

먼저 지평선축제에 대해 물었다. "이름은 났습니다. 그러나 시민의 삶과는 별 관련이 없어요. 외지인에게 막연하게 농경문화 눈요기만 시키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까칠한 대답을 들려준 시민운동가 이봉원 목사(54)는 김제통일연대와 자치발전 김제연대 등 돈 안 되는 일만 도맡아 하고 있었다.

 

통일연대에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 80년 5월 신군부에 의해 숨진 이세종 민주열사와 조성만 통일열사가 모두 김제 사람이란다. 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추모사업회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동제 꾸리는 일이 그의 임무. 대선이 끝나고 실용이 화두가 되는 시점에서 민주화를 위해 온 몸을 바친 두 청년을 오래도록 김제의 자존심이라 생각하는 이목사는 온화한 자태지만 결기가 살아있는 얼굴이었다.

 

김제지역내 20여개 민간사회단체가 추진위를 구성 통일대행진 행사를 주최하려면 그 조정능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강산에' 공연을 비롯 50인의 사물놀이와 가야금산조, 통일대합창, 대동마당 등 김제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열린마당을 몇 년 째 꾸려온 이목사가 목회를 하는 용지면 모산 마을이 조성만 열사의 고향 그곳이란다.

 

 

'더이상 김제를 떠나지 않게하라' 아이디어 뱅크- 강주석씨

 

김제신문사 주필 강주석씨(51)는 마당발이다. 박인수 교수와 그의 제자들을 초청해 해마다 음악회를 개최하고 지역 작가들을 위한 미술전을 개최한 사람. 강 주필은 지평선축제에 기꺼이 참여한다. 축제기간 중에는 인터넷 방송국을 열어 실시간으로 행사를 중계하고 어린 아이들을 위한 '페이스페인팅'과 '가훈 써주기' 코너는 시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최근에는 한국 사교육 시장의 절대강자 메가스터디 손주은 원장을 불러 김제시민을 위한 입시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김제의 인구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강씨의 지론이다.

 

김제의 아이디어 뱅크라고 알려져 있는 강 주필은 『김제사람들』이란 책자를 내기도 한 사람이다. "전주가 영화의 거리 그리고 부안이 물의 거리를 조성한 것처럼 시내에 농경의 거리를 조성해야 합니다." 덧붙여 조정래 소설 아리랑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머물렀던 곳을 체험코스로 만들어 보자는 구상과 정읍 산외에 버금가는 한우특구단지에 대해서도 소상한 아이디어를 들려준다. 축제 때 사용한 설치 구조물들을 벽골제 공간에만 한정하여 놓지 말고 김제시 여러 곳에 배치하여 시민들과 더 다가서는 방법을 연구하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환경미술로 김제 지키는 화가 박종한

 

박종한씨(52)는 환경미술 화가이다. (사)환경미술협회 김제시지부장을 맡고 있는 박화백은 사라지는 모정이나 당산 오래된 것들을 한국화의 유려한 필치로 복원하여 제34회 전라북도 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특선을 수상한 수상자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박씨는 전북의 산하를 그려나가는 알아주는 '동이회' 회원이었다. 올해 무진장을 필두로 10년 프로젝트로 '아름다운 전북전'을 추진하는 뚝심을 발휘한다. 박씨에게 환경미술협회에 대해 물었다. "자연과 환경을 소재로 한 작품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지요" 2002년 문광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법인단체로 한국화 서양화 서예 등 작가 27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환경에 중점을 두어 아름다운 김제를 표현하고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활동에 대해 물었다. '청소년과 함께'라는 테마로 청소년수련관에서 전시를 했고 지난해 5월에는 회원들의 작품을 김제시노인요양원에 기증하기도 했다고.

 

 

모악산되살리기 나선 시민운동가 출신 김익현

 

전 김제시민의 신문 편집장 김익현씨(51)의 경력은 다채롭다. 시민운동가로 잔뼈가 굵은 몸이지만 젊은날 민주화를 위해 애쓴 것 말고 녹두골에서 좀 '놀았던' 사람이다. 그는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에 곡을 붙이고 직접 노래를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이제 지평선은 대한민국 사람에게 각인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누구는 시로 또 노래로 그림으로 지평선을 그려내는 것이지 몇 몇 이벤트 회사들이 반짝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시민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김씨의 관심은 모악산 되살리기, 정상에 흉칙하게 들어선 두 개의 커다란 송신탑과 각종 시설물을 치워야 한다고 말한다. 김제 모악산 아닌 전주 모악산이 되는 현실에 김씨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농사 지으며 문학 싹 틔우는 시인 김유석

 

"김제요? 백성을 먹여 살리는 곳인데, 과거의 기억에 얽매어 있는 곳이란 느낌이 듭니다." 죽산에 살고 있는 김유석(48) 시인은 말한다. "26만이었던 날이 엊그젠데 패는 곡식 이삭 빠지듯 10만이 무너졌어요." 들판을 갈아 자연의 비밀을 캐내는 농부이자 시인인 그는 전북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거친 중견시인이다. 김시인은 데뷔 15년이 지나서야 첫 시집 『상처에 대하여』를 내놓았다. "논에서 일하는 것 못지않게 시 쓰는 것은 고된 작업입니다.” 2만 5천평의 논이 농부에게 시를 쓰게 한다고. '한 필지쯤이야 해장거리'밖에 안 될 정도로 건장한 김시인은 요즘 칠팔 명의 후배시인들과 <시야(詩野)> 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후배들의 시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김시인에게 아리랑 문학관에 대해 물었다. "아리랑문학관은 있어도 김제 출신 작가 임영춘 선생이 쓴 『갯들』이 없습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 오직 땅만이 알고 침묵할 뿐이죠."

 

김제의 인구유출문제는 심각했다. 젊은이들이 서울로 전주로 떠난 생명의 땅에 남아있는 이들은 '남겨진 사람'이 아니라 '안 떠난 사람들' 이라고 강변하는 김 시인의 말이 날선 보습 같았다. 이들 문화일꾼들은 닮아있었다. '닮은 것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도/ 서로의 몸에 마음을 드리우기도 한다'는 김유석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지평선이 김제를 떠나지 않듯 그들은 묵묵히 김제를 지키고 있었다.

 

/신귀백 문화전문객원기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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