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 안을 들여다보니 나뭇가지 끝을 담고 활동사진처럼 흘러가는 구름을 보여주고 있다. 열 서너 살까지 그랬듯이 그 안에 발을 담그고 실컷 꾸정거리다 물을 가라앉혀 웃물에 물수제비뜨듯 발에 묻은 모래알을 씻어내고 싶다. 그냥 스쳐가기가 망설여진다. 들여다볼수록 우묵하니 폭 파인 모양이 항아리 속 같다.
그즈음 우리 집에는 하릴없이 입을 벌리고 빗물이나 받아마시던 큰 독이 있었다. 웅덩이 같은 독이었다. 주둥이에 금이 간 그 큰 항아리를 자주 들여다보았었다. 항아리를 들여다 볼 때도 내 배경으로 구름이 흘렀었다.
나를 보다가 내 배경을 바라보다가 그도 시시해지면 손으로 휘휘저어 항아리 안이 소용돌이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 더 이상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배경이고 뭐고 얼굴까지 일그러져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니 항아리속이 우렁잇속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뱅뱅 돌아가다 급작스레 항아리 밑이 열리며 딴 세상으로 연결된 통로가 나타날 것도 같았다. 물길을 따라 눈을 굴리다 아차 싶은 생각에 고개를 추켜세울 때면 반쯤 쓸려 들어가다 빠져나온 듯 머리가 더없이 무거웠다.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이 깃든 순박하고 수더분한 장독대 옹기는 보는 마음에 여유를 준다. 그러나 항아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속에서 폭 곰삭든지 익어가든지 분주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듯 은밀한 울렁임이 충만하다. 사람 속도 항아리와 같아서 편안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한가지씩은 속에 담고 있는 크고 작은 고민이 있는 듯하다.
요즘 본의 아니게 내 안에 많은 비밀을 담아두게 되었다. 우연히도 만나는 이마다 비밀이라며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속내를 털어놓고는 마지막으로 뚜껑을 덮듯이 비밀이라고 말하는 통에 나는 얼떨결에 항아리가 되어 꾹꾹 눌러 놓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만 하여도 그랬다. 햇빛 좋은 1층 카페에 앉은 나는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셨지만 다른 자리로 옮겨 앉지 못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넓은 창을 등지고 앉아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창 밖 도로에서는 그녀의 머릿속의 엉킨 실타래처럼 교통수단들이 그녀의 꼭뒤를 중심으로 양 갈래로 더 없이 복잡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머릿속에 들락거리는 듯한 그 모습에서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녀와 누군가의 사이에 연결된 소통의 길이,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져 흐물떡거리는 그 그림의 길처럼 어지럽게 엉켜 그녀를 제멋대로 쥐락펴락하듯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햇빛에 눈부신 일쯤은 참을만하였고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당부할 때까지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웅덩이를 만나는 일이 산책할 때만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나누다 좋았던 감정은 오해와 실수로 웅덩이처럼 고여 앙금이 될 때가 있었다. 그런 일에 부딪히면 나는 웅덩이가 된 상처를 감추기 위해 슬슬 위장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갔었다. 무작정 덮어놓아 빛에 말라버릴 시간도 없이 곪아 터지도록 상처를 키우곤 하였다.
그녀 역시 웅덩이를 하나 품고 있는 듯 수심이 언뜻언뜻 보였다. 두고두고 웅덩이가 되었을 상처지만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 살갗에 앉은 딱지처럼 말라가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성급히 떼어버리면 아직 깨끗이 아물지 못한 핏빛 새살이 아려올 것이다. 웅덩이가 차츰 말라서 비었다가 원래의 흙길로 돌아가듯 아물어갈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녀는 베보자기를 덮듯 살포시 내 손을 잡더니 밀봉하듯 비밀이라 말했다. 그렇다고 자리를 옮겨 앉은 말이 새어나갈까 염려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단지 옮겨 퍼 담아 둘 곳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바닥에 깔린 눅눅한 심기를 걷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무거운 이야기와 함께 덩달아 앓기도 했으나 곧 일부러 심드렁하니 마음을 비워 버릇하였다. 무거운 이야기는 바다 밑바닥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숨어 사는 한 마리 쑤기미처럼 항아리 밑에 가라앉아 항아리 주인인 나도 잊어먹고는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은 비슷비슷한 문제를 끌어안고 산다는 것을 절감하기에 내 고민도 한 마리 쑤기미처럼 가라앉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항아리 중에 뱃심 두둑한 전라도 항아리가 눈에 익다. 옛적에 우리 집에서 빗물을 받아마시던 항아리와 비슷하다. 언제 보아도 듬직하고 안정적으로 자릴 잡고 있으니 닮아봄직 하다는 생각이지만 남의 이야기까지 담아둔 내 항아리는 비온 뒤 논물 넘치듯 넘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찰랑찰랑 넘치려 간지럽게 목줄에 올라서는 이야기를 간신히 눌러 놓곤 한다. 몇 번은 주둥이에 금이 간 깨진 항아리 꼴이었다. 항아리는 깨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눈치 없는 누군가는 여전히 내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어디를 가더라도 질그릇은 내 눈을 사로잡는다. 더욱이 웅덩이처럼 움푹한 항아리가 날 잡아끈다. 항아리에 홀딱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넘치기 전에 내 속의 이야기를 부어놓기 위함인지 모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덜어내고 싶다. 내 이야기도 어딘가에 담아두고 싶다. 큰 항아리라면 듬직하여 좋겠지 싶다. 그 안에 빗물을 반쯤 받아놓고 들여다보면 내 멍울도 풀어져 푸른 하늘빛이 내 배경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책상에 덩그러니 놓인 컴퓨터가 항아리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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