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역인 독립운동가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5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조 이사장은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강관주식회사에서 조선인 노동자 2천여명을 규합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뒤 국내로 돌아와 유만수ㆍ강윤국 선생과 함께 애국청년단을 결성,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살아있는 애국지사 중 '의사'라는 호칭으로 불린 마지막 독립운동가인 조 이사장의 최대 투쟁성과는 부민관 폭파의거다.
일제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조 이사장은 일본 중의원까지 지낸 거물 친일파 박춘금이 대규모 친일집회를 열고 있던 서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동료들과 함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집회를 무산시켰다.
이 사건은 당시 일제의 보도 통제로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경성 한복판에서 일제와 친일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대표적인 쾌거로 손꼽힌다.
해방 이후 활발한 민족주의 운동을 벌이던 조 이사장은 미 군정 당시 '이승만 암살 조작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조 이사장은 이후 은거에 들어갔으나 1980년대 뒤늦게 독립운동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1999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다.
조 이사장은 "해방이 됐지만 친일파들이 세력을 잡았으니 독립이 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독립운동가라고 연금만 받아먹을 수는 없다"라며 친일파 청산에 마지막 정력을 쏟았다고 연구소 측은 전했다.
하지만 그는 2006년 11월 골수종과 파킨슨병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고 경기도 수원의료원에서 힘겨운 투병생활에 들어갔으나 많은 나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진행하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에 전념했던 조 이사장은 사전 발간(올해 8월 예정)을 불과 6개월 남겨두고 숨을 거둬 주변의 아쉬움을 낳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의 빈소를 서울로 옮기는 문제와 '겨레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문제 등을 유족과 협의 중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영심씨와 딸 조정화씨, 사위 김석화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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