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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⑪정읍 '기적의 도서관'에 가다

책상부터 변기까지 어린이에 맞춰…인력부족·외부환경 부조화 아쉬워

소문대로였다. 정읍시 수성동 신시가지에 자리한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 전용 도서관에 걸맞게 무지개와 달팽이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이 매혹의 도서관은 주말 어린이와 젊은 부모들로 책꽂이에 낀 책처럼 빈틈이 없었다. 독서의 방법으로 의자에 반듯이 앉아서 책을 보라는 법은 없다. 이곳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답게 다양한 방으로 나뉘어져 아이들은 콩깍지를 나온 콩처럼 흩어져 숨어있기 좋은 공간에서 눕거나 기대어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을 들고 화장실로 가는 아이도 있었다. 책은 인간을 존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 더듬이로 책을 만지는 달팽이 같은 정읍의 귀한 아이들은 참 행복한 모습이었다.

 

▲공공 디자인 개념의 도서관

 

디자인은 새로운 정신의 반영이다. 입구에 새겨진 '기적의 도서관' 글씨체가 예쁘다 했더니 판화가 이철수의 글씨다. 설계는 정기용 성균관대 석좌교수의 작품. 노무현 전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도 정 교수의 작품이라고. 도서관 입구를 찾기 어려워 관리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도서관의 외관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오라는 설계자의 배려란다. 기둥은 컬러 철재, 외벽은 노출콘크리트 타입에 지붕은 여객선 선실 같은 둥근 유리창에 외부 마감은 나무로 한 것이 일찍이 보지 못한 디자인이다. 지붕위에 올려진 설치미술작품인 커다란 달팽이는 드로윙으로 유명한 예술종합학교 안규철 교수의 작품인데 저녁이면 이 달팽이가 무지개 색으로 변한다.

 

정읍 사람들은 안다. 지금의 먹자골목이 돼버린 수성동은 옛날 흘림다리가 있고 논밭에 달팽이가 기어 다니던 들판이란 것을. 여기 택지가 조성된 곳에 들어선 도서관은 연면적 1258.7㎡(385평), 이 정도를 학교 교실로 따지면 교실이 20칸이다. 외관보다 안이 더 풍성한 내부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답게 책걸상, 서가, 화장실 변기까지 모든 가구와 시설물이 어린이 키에 맞는 눈높이와 행동양태에 맞게 디자인돼 있었다. 개가식으로 서가를 배치한 중심축을 두고 사방에 촉수를 뻗은 마법의 성에 숨어 책을 읽는 친숙한 공간으로 설계된 것이 여느 네모난 도서관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 설계자의 어린이를 배려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물었더니, 이 양반 동화를 쓰신단다. 이곳을 드나드는 아이들이 어리다 해도 분명 책 말고 디자인을 보기도 할 것이다. 직선 아닌 곡선이 아름답다는 것을, 왜 이곳이 편하게 느껴지는가를.

 

밤 늦게까지 불을 밝힌 정읍 기적의 도서관.지붕에 설치된 달팽이 조형물은 밤이 되면 무지개빛 조명을 받아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email protected])

▲눈높이를 맞춘 도서관

 

세면대와 변기가 설치된 책 읽는 공간이라? 1층 유아방은 엄마들이 젖먹이를 데리고 책을 읽어줄 수 있도록 한 섬세한 배려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의자가 놓이지 않은 온돌방이었고 아기 엄마 곁에는 젖병이 놓여져 있었다. 서가에는 어린이를 위한 입체로 튀어나오고 들어간 네모나지 않은 둥근 책들과 그림이 많은 키가 큰 책들과 만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1만9천권에 이른다.

 

사람들은 자의식이 생기면서 자기만의 방을 꿈꾼다.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어린이들은 구석을 좋아하고 숨어있기를 좋아한다. 대나무방, 무지개방, 구름방 등 크고 작은 공간 안에는 배를 깔고 혹은 책상다리를 한 아이들로 가득 찼다. 효율성보다는 기대어 쉬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방들은 이곳이 실내 놀이터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딸 민주(9)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수성동에 사는 최재연(40 교사)씨는 "이 동네는 식당과 술집이 많아 육아공간으로 안타까움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정읍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뿌듯하게 느껴진다." 고 말하기도.

 

▲인력보강과 조화

 

예산이 28억이 들었단다. 초대관장을 맡은 김영란(46 사서)씨에 의하면 이 도서관이 국내 10번째로 개관한 기적의 도서관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규모를 자랑한다고. MBC-TV 프로그램 '느낌표!'에서 비롯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로 여기 정읍에 부지 1688㎡(약 500평) 규모로 건립했다. 이 기적의 도서관은 정읍시가 부지와 건축비를 마련하고, '책사회(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상임대표 도정일)'가 설계와 운영 프로그램 등을 맡았다고. 쉽게 말해 민관협력사업의 좋은 케이스다. 건물의 설계자가 어린이를 배려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물었더니 서기선(28) 신참 사서의 답변이 이 양반 동화를 쓰신단다. 아하, 그렇구나. 입구 어린 아이들의 그림 전시 역시 설계자의 아이디어란다.

 

운영의 어려운 점을 물었다. "도서관은 자라나는 어린이를 위한 최선의 성장환경과 최선의 봉사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김관장은 사서 둘과 공익근무, 청소보조요원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고 말한다. 홈페이지를 운영할 전문인력과 사서의 보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건물 디자인으로서 수성동의 랜드마크 기능을 할 수 있는 매혹적 외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건물과의 조화는 아쉬운 흠결이었다. 도서관 곁 개인이 상업용 건물을 짓고 있어 앞을 가로막는데다 주변의 체육시설과 비닐하우스 등 사전정화장치가 부족해 외부환경에 대해 전혀 교감이 없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내부적 측면으로서 도서관의 이용과 절차에 대한 친절한 사인보드 기능이 부족했고 어린이의 독서능력 증진을 위한 단계별 독서지도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아직은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 듯했다.

 

▲공동체가 가야할 길

 

이제 설립의 기적이 있었다면 이제 운영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 도서관이 책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용자들은 다 알고 있다. 도서관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이 지역 문화센터의 중심으로 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한 동아리 모임의 활성화, 문화공연, 책읽어주기, 문화강좌, 학부모 모임 같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부족한 일손을 메울 자원봉사자는 여기서 나와야 할 것 아니겠는가. 시에서 좋은 도서관을 세운만큼 부모들이 공공성을 위해 봉사하는 마인드가 있을 때 내 고장을 사랑하는 공동체 정신도 생겨날 것이다.

 

교육이 평등 기회의 확대라면 그 실천의 작은 덕목은 독서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빌게이츠가 오늘의 영광을 모두 동네 도서관으로 돌리는 것은 겸손만은 아니리라. 도서관은 많을수록 좋다. 이곳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편히 쉬고 상상을 통한 창조의 예비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운영계획과 자원활동가의 활약이 절실히 요구되는 모습이었다.

 

아직 기적의 도서관에 들르지 못한 시민들께서는 도서 대출을 위하여 등본이나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가시길. 사진이 없는 어린이에게는 도서대출증에 들어갈 사진도 도서관에서 직접 찍어주는 서비스를 한다. 혹시 아이들이 다칠까봐 보험가입도 되어있다.

 

/신귀백(문화전문객원기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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