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와 섬진 사이에 문학가도(文學街道)가 있다
▲ 길을 함께 걷는 일
나 혼자만 여행한다고 느낄 법한 경우가 더러 있지만, 실제로 길에 혼자 나서는 영혼은 거의 없다. 우리의 여행엔 언제나 동반자가 있게 마련이다.
먼저 '나'는 '나'와 함께 여행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화해하기 위해 여행하기도 하고, '페르소나'와 내가 갈등하며 길을 걷는 경우도 있다. 또, 친구나 가족은 예로부터 가장 편한 길벗이었고, 생면부지의 동행도 길 위에서는 낯설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먼 시간, 먼 나라의 기억도 여행의 동반으로 충분하다. 어떨 때는 산하나 시절이 도반이 되는가 하면… 카메라나 배낭도 벗이 된다. 배낭의 무게, 카메라가 향하는 풍경이 길에 나선 이의 마음의 짐과 시선이 가 닿을 곳을 먼저 알려주지 않던가…
이런 동행 중에는 불가분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림자와 본신이 서로를 애달파 하듯(形影相憐), 산과 강은 한 몸이다. 산이 높아야 물도 깊고 맑다는 단순한 사실, 단순함은 때로 크게 아름답다… 나는 그걸 17,18,19번 국도가 이어졌다 흩어지는 지리산 섬진강변에서 느낀다.
덕유-지리산 사면을 따라 계곡이 생기고, 그 계곡물이 섬진강이 된다. 산이 흐르는 만큼, 강도 흐르는 것이다. 산이 강의 이마를 짚고, 강은 산의 허리를 휘감는다. 산과 강이 몸을 섞는 자리에는 생명이 핀다. 바위를 핥고 지나는 강물에 물거품이 이는 것처럼, 생명 가진 것들은 또 저마다의 무늬를 갖는다.
문학(文學)을 무늬(紋)에 대한 공부라고도 하지 않던가, 마음 무늬, 삶의 주름…
지리산과 섬진강이 겹쳐지고 펼쳐진 자리마다 사람살이가 있고, 사람살이는 기억과 서사의 무늬를 만든다. 산 기운이 맺히고 강물 여울진 곳마다 결진 무늬들이 없을 수 없다. '춘향가'를 비롯한 판소리계 소설들은 물론, '토지', '태백산맥', '지리산', '혼불'과 같은 굵직굵직한 한국문학사의 대하 장편들이 이 길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난 이런 점에서, 지리산과 섬진강을 따라 남행하는 이 길을 이 나라 최고의 문학가도라고 불러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 17번 국도가 가는 길
전주에서 남원, 구례로 이어지는 17번 국도 구간의 대부분은 철도 '전라선'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뻗어간다. '신작로'나 '철도'는 틀림없이 옛길을 덮어나갔을 터… 한벽루, 좁은목, 만마관을 지나면 이 길을 '춘향로'라고 칭한다는 표지석이 나오는데, 이 길머리 표지는 아마도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춘향이와의 재회를 위해 들어섰던 옛길을 상기시키고자 하기 위함일 것이다.
버선밭이나 오리정, 춘향터널 등… 이 길의 언저리에서는 문학적 상상과 현실적 공간이 굳이 구별되지 않는다. 이같은 사정은 최명희 선생의 작품 '혼불'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남원시 사매면에 자리한 '혼불 문학관' 가는 길은 마치 우리가 잘 몰랐던 1930년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17번 국도의 주요 거점인 남원에 맺힌 모든 문학적 성과들이 모두 이와 같은 느낌을 준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남원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서는 부처님과 양생이 저포놀이를 하고, '광한루'는 지상에 실제로 구현된 춘향전의 공간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남원이기에, 송흥록의 무덤이 새삼 발견(?)되고 흥보마을이 건설(?)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을 것이다.
남원에서 탄생했거나, 이곳을 배경으로 활동한 이들은 모두 마음이 붉고 밝은 이들이었다. 춘향이나 청암부인과 같은 작중인물들도 그렇지만, 김시습이나 최제우와 같은 사상가들이 남원을 집필의 배경지로 삼은 것은 여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남원~구례~하동~광양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하류에 풍족한 물산을 허락했다. 더불어 너른 사람살이도 여기 펼쳐졌다.
문학은 상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꽃핀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현실인 동시에 꿈의 공간이었다. '우적가'를 지은 영재 스님이나 최치원, 이규보, 이인로, 김종직, 유몽인 등 당대의 문사들이 지리산을 찾아들었던 것은 이곳이 꿈과 현실이 서로 부딪치고 화해하는 경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 마을 뒤는 산이고 앞은 강이다. 훌쩍 고개나 나루를 건너가면 자신의 터전인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떠나는 이 중에는 돌아오는 이도 있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이도 있다. 성곽에 둘러싸인 마을에서는 흔치 않은 장면들이 여기에서는 비일비재한 것이다.
▲ 길이 나뉘고 강은 넓어진다
17번 국도를 따라 가다 18번 국도가 분기하는 압록 즈음이면 섬진강은 확연히 강의 모습을 갖춘다. 여기서 18번 국도 쪽으로 넘어가면 여행자들의 필독시인 '국토'의 시인 조태일을 기리는 '조태일시문학관'이 있고, 흥보마을과 유사한 '심청마을'도 볼 수 있다.
다시, 17번 국도를 따라가다 구례구역에서 19번 국도 쪽으로 방향을 틀면, 지리산과 섬진강이 제일 잘 조망된다는 '사성암'이 있고 그 길을 따라 더 내려가다 보면, 흔히 강변 드라이브 코스의 백미로 꼽히는 구례~하동 구간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피아골이나 쌍계사, 화계장터를 지나면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촬영을 위해 조성한 '토지마을'과 '평사리문학관' 표지판도 보인다… 거기서 좀 더 내려가 2번 국도 쪽으로 접어들면 최근 개관한 '이병주문학관'도 우리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그뿐인가, 천은사 앞에는 구한말의 문장가로 선비의 의기를 보여줬던 황현을 기리는 매천사당이 있고, 사성암 건너편 골짜기에는 지리산 골짜기를 바이크로 누비는 이원규 시인이 살고 있으며, 평사리 토지마을을 지나 더 산길을 올라가면 햇빛 맑은 양지뜸, 모악산에서 지리산으로 터전을 옮긴 박남준 시인의 집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함께 빚은 천연의 풍경 속에 인간이 빚은 문학의 풍경이 아롱진다. 배낭 속에 책을 집어넣기보다는 먼저 읽고 길에 나서는 것이 훨씬 가뿐하겠지만, 안 읽었으면 또 어쩌랴, 곳곳에 흔적을 새긴 문학의 풍경 속으로 걷는 길이다…
당신 길의 동반이 문학임을 잊지 않는다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문학의 표정으로 당신 앞에 다시 펼쳐질 것이다. 그 풍경의 무늬결을 더듬어 따라가다, 문득 마음에 여린 떨림이 있다면, 집에 돌아가 책장을 펼쳐도 무관치 않겠는가.
/김병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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