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베풂보다 정신적 보시가 고통에서 해방되는 방법 알려줘
우리의 마음은 매일 변한다. 그것이 슬픈 것이건 즐거운 것이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내는 모양에 따라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때로 주변 사람에게서 내 행동의 결과에 대한 반응이나 칭찬을 듣고자 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물질적 보상이나 심리적 인정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우리는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실망이나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무언가 기대가 있기에 내 마음 속에서의 실망도 큰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산냐(相)라고 말한다. 이는 마음에 어떤 모양을 굳게 만들어 가지고 있는 상태, 즉 생각, 이념, 고정관념, 마음의 경계 등을 말한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면 그에 따라 보상을 받고자 한다. 즉 상대를 위해 무언가 일을 하고나면 그 물질적 대가를 얻고자 하며, 누군가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면 인정과 칭찬이라는 심리적 보상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심리적 갈등과 고통을 느끼며 미움을 갖게 된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그 결과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나 행동을 살피지 않고 우리는 보통 상대방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는다. 내 행동이 빚은 삶의 결과를 성찰하지 않고 주변 사람만 원망하는 것이다.
불교의 핵심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 무엇에도 주착되지 말고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속적 가치나 외양에 머물지 않고 모든 집착과 샨냐를 버리고 텅빈 마음으로 사랑의 실천행위를 하는 것을 '지혜의 완성'으로 본다. 나(자아)라는 생각도, 사람들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마치 뗏목을 사용한 후 그것을 버리는 것과 같이 법(진리)이라는 생각마저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머물지 않는 마음(應無所住)과 그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以行報施)이야말로 최고의 지혜를 깨달은 실천행의 경지이다.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회통하며 사는 무애의 경지가 바로 참 진리의 세계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를 일곱 가지 보물로 가득 채우고 보시를 하는 것보다 산냐를 버리라는 법을 전하는 것이 공덕 가운데 으뜸으로 본다. 즉 세속적 재물을 나누는 것보다 진리를 나누는 것이 더 큰 보시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재물이나 권력, 세속적인 가치에 매몰되거나, 세상에 대한 선입견과 잘못된 신념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로 원한과 집착에 사로잡힌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진리의 나눔은 그 어떤 물질적 베풂보다 귀중한 정신적 보시인 것이다. 작고 조용한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진리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집착이 고통을 주며, 집착 없는 마음이 자신의 삶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가장 큰 나눔의 실천인 것이다.
/김정현(원광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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