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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20)흑백사진가 신철균씨

"직접하는 암실작업에 긍지"

흑백사진가 신철균씨가 과거에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옮겨 담기위해 필름을 살펴보고 있다. 오균진([email protected])

"64년부터 암실에 들어갔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소.”

 

63년부터 군산을 중심으로 한 항만 하역장·해망동시장·째보선창·우풍화학 일대가 그의 셔터에 의해 빛바랜 기억으로 걸렸다.함북 청진 출신으로 해방 후 서울로 내려온 흑백사진가 신철균씨(80)는 가난하고 고달펐던 시절의 소박하고 작은 찰나에 주목했다. 아이들의 사심없는 순한 마음, 순결하고 찬연한 표정에 눈맞춤을 하노라면 마음 속 속된 잡풀들이 하나씩 뽑혀진다.

 

스냅사진을 고집해온 그는 카메라 둘러매고 나설 때마다 10∼15통의 필름을 챙겼다. 허공에서 키질하는 숙명적 끌림을 포착하기 위해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대기 위해서다.

 

"디카가 나와서 얼마나 행복한 줄 모르갔소. 내가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디카로 찍으면 작품성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해요. 사진은 머리로 촬영하는 것이지, 기계로 하는 것은 아니잖소”

 

딸의 권유로 뒤늦게 만지작거리게 된 디지털 카메라. 필름 없이도, 흑백이건 칼라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도록 즐거움을 되엮는 보물이다.

 

필름과 디카 작업을 동시에 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 20일 전부턴 하루에 10시간씩 몰두하면서 60년대부터 현재까지 찍어왔던 필름들을 스캔해 컴퓨터로 옮겨 담고 있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찍었는지 알파벳으로 분류해 일상사는 A, 아이들은 C, 풍경은 S 등으로 꼼꼼하게 정리했다.

 

"내가 죽고 나면 값어치 있는 작품을 확대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지요. 내가 아날로그 시대 마지막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새기는 것이죠.”

 

작품 제목도 붙이지 않는다. 작가 혼자 도취된 사진이 아니라 각자 생각할 여지를 두기 위함이다. A4 용지(11x14cm)만한 사진 크기도 한결같다.

 

그가 추구하는 사진의 본질은 삶의 현장에서 가감없이 피사체를 포착하는 것이다. 거짓 없이 후대에게 역사를 물려주는 것, 하찮은 미물도 남기는 역사정신의 발로다.

 

흑백사진을 고집하게 된 연유도 있다. 칼라를 선택하면 다른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되기 때문에, 본래 이미지가 변형되기 때문.

 

"칼라는 색으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지만, 전부 내 손으로 못 만들지요. 흑백사진은 긍지가 없으면 못하는 작업입니다”

 

카메라를 놓고 싶은 순간도 물론 있었다. 원하는 대로 작품이 안 나올 때, 필름 없어서 찍고 싶은 걸 못 찍을 때다. 하지만 앵글을 따라 놓여진 사념의 다리를 따라 가보면 이것도 금새 잊혀진다.

 

그는 마음을 비우며 살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작가란 말을 단 한번도 자신의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중앙 무대를 욕심내지 않고 쉼없이 기록해왔지만, 「신철균 흑백사진집」 (1998)은 그가 출간한 책의 전부.

 

"마음을 비워야 작품도 내면에서 스스로 우러나옵니다. 작품 앞에서 자신을 앞세우지 말아야 해요. 제3자들이 알아줘야 진짜 작품이지….”

 

신재풍 김승중 김수관 이태주 유용희 김연길씨 외엔 문하생도 없다. 하지만 젊은 사람 몫은 따로 있다고 여긴다. 제자들에겐 외부 진출을 권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며, 작품의 외연을 넓히라는 뜻. 김수관씨(군산대 교수)가 지난해 베니스 국제사진전에서 2,9위를 해 수상하는 기록도 남긴 것은 신씨의 또다른 기쁨이다. 국내에선 주목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통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내년엔 문하생들과 함께 3개월간 개인전을 열 계획. 시작과 동시에 작업을 이미 다 끝냈다.

 

가슴 안 꽃등을 켜 영혼의 창을 열고 바라보는 눈맞춤은 그칠줄 모른다.

 

순수를 꿈꾸는 하늘자리, 소박한 흙을 품는 낮은 자리에 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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