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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교수의 철학 에세이] 고독과 홀로서기

고독 통해 자기존재 지탱할 때 타인과 건강한 관계 설정 가능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고독과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친구나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고 갈등을 빚거나 화해하는 등 타인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간다. 심심하면 친구들과 백화점에 가서 쇼핑하고 식사하면서 하루를 소일하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하면 하루 종일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하기도 하고, 적적하면 동우회를 만들어 운동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등 여가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여가와 취미가 있어도 때로 사람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무언가 모를 갈증과 허기를 느낀다. '기분전환'을 통해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도피하고 있다는 파스칼의 말처럼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주위의 친숙한 사람들 속에서도, 여가나 취미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의 고독을 느낀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가슴 속에는 허전함의 바람이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고독은 삶을 관통하는 존재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독은 인간에게 절망의 병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성숙을 할 수 있는 존재의 치유제가 될 수 있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과 만나고, 무절제, 욕심, 분노, 나태, 명예욕, 질투, 교만 등 자신의 욕망이나 내면과 대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자신을 이해하고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의존해 있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홀로서기의 힘을 발견한다. 고독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고독이란 타인과의 관계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홀로서기와 관계있다고 말한다. 고독과 고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팽팽하게 지탱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우리는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독을 통해 홀로서기의 힘을 얻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걸머지며 타인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의 신부인 그륀은 고독이란 인간적 성숙을 위한 조건이자 영적 성장의 토대이며 동시에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고독 속에서 만나는 우리 안의 고요의 공간이 곧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때 고독은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삶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 의존하며 세속의 신고(辛苦)를 겪는 것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선 삶은 모든 사람에게 경쾌한 삶의 에너지를 준다. 연꽃이 진흙 연못에서 피어나듯이 인간의 영혼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 열리는 것이다. 고독이 자신의 존재를 여는 영혼의 개화(開花) 에너지가 될 때 인간은 더욱 성숙하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김정현(원광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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