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에세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출간
여러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고 외국에도 작품이 번역된 '성공한' 소설가 겸 국립대 교수, 라디오 문화프로그램 진행자, 한 여자의 남편, 한 채의 아파트를 소유한 서울시민.
소설가 김영하 씨는 "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부족한 게 없지만 숨 막히던 삶을 살던 그는 돌연 학교를 그만 뒀고 곧 이어 라디오 진행을 그만 뒀고, 마침내 서울 살림을 정리해 1년간 캐나다로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집이 팔린 후 캐나다에 들어가기 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아내와 함께 "내가 꿈꾸던 이탈리아"가 있던 시칠리아로 떠난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랜덤하우스 펴냄)는 작가가 시칠리아에서 보낸 시간들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다.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으로 소모적인 일상을 보내던 작가는 시간이 멈춘 듯한 시칠리아의 단순하고 여유로운 일상에 금세 빠져든다.
특히 시칠리아 북쪽 바다에 있는 화산섬 리파리 섬에서는 여행자가 아닌 마을 주민의 한 사람처럼 흡수된다.
이 책은 한 권의 근사한 여행기이도 하지만 시칠리아라는 배경보다는 시칠리아에서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더욱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작가는 페리 터미널에서 '유실물 주의'라는 의도로 쓰였을 법한 'Memory Lost'라는 영문 전광판을 보며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시칠리아에 깜빡 두고 온 것들이 아니라 서울에서 잃어버린 것들이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291쪽)
작가가 직접 찍은 시칠리아의 풍경들도 함께 수록됐다.
293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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