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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빛바랜 추억으로 남은 혁명의 꿈

양이 소설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은 73년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 주인공인 중국계 여성작가 양이(楊逸)는 스물두 살 때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본어를 배운 작가로, 일본 문단은 성년이 돼 일본어를 배운 작가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일본 문학의 개국(開國)을 알리는 '일대 사건'"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에 국내 번역 출간된 그의 수상작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재인 펴냄)은 작가의 개인 경험에 어느 정도 기댄 작품이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하오위엔의 아버지도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농촌으로 추방된 지식인이었다.

 

소설은 시골에서 어렵게 자란 하오위엔이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명문대에 합격해 도시로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희망과 의욕으로 가득 찬 캠퍼스에서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인재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기까지 했던 하오위엔은 곧 부정부패 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 시위에 적극 가담한다.

 

그리고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사건으로 투쟁이 좌절되자 낙담한 하오위엔과 친구들은 술집 주인과 언쟁 끝에 난투극을 벌여 퇴학을 당하고 만다.

 

소설은 이후 10년을 뛰어넘어 하오위엔이 일본에 정착한 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오위엔은 일본에서 재일 중국 민주동지회에 가입해 민주화운동을 이어가지만 그의 이상과는 괴리가 있는 민주동지회의 모습에 좌절감만 키워간다.

 

톈안먼 사건 전후부터 중국이 베이징올림픽 유치를 확정할 무렵까지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지만 소설은 부담 없는 분량만큼이나 무겁지 않게 읽힌다.

 

그러나 작가는 몇 가지 장면을 통해 역사에서 고뇌하고 좌절하는 중국 청춘들의 모습을 구구절절한 서술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민주화 달성'과 '먹고 살기'의 우선순위를 놓고 벌이는 하오위엔 일행과 술집 주인의 다툼이나, 성공한 화교 사업가로 변해버린 민주화 동지의 모습을 본 후 고향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오열하는 하오위엔의 모습은 어느 곳의 청춘이든 느낄 법한 무력감과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난주 옮김. 172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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