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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걷고 즐기는 제주올레 문학투어

"아니 왜들 이렇게 급하게 걸으십니까? 누가 쫓아옵니까? 주위에 풀과 나무도 감상하시면서 천천히 걸으세요."

 

10일 제주올레 1코스가 시작되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 부근. 코스가 시작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엄홍길 씨가 웃으며 한마디 하자 소설가 김주영 씨가 받아친다.

 

"우리나라 걷기 일인자인 엄홍길 대장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들 천천히 '놀멍 쉬멍'('놀며 쉬며'의 제주도 사투리) 걸읍시다."

 

습관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사람들은 그제야 발걸음을 늦추고 주위를 둘러싼 까만 돌과 선명한 녹색 들판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제주도 도보여행길인 올레길을 명사들과 함께 걸으며 문학적 정취를 느끼는 제1회 제주올레 녹색문학투어가 문학사랑과 한국관광공사, 진에어의 공동 주최로 10일 열렸다. 2박3일간 진행되는 이번 투어에는 '길 위의 작가' 김주영 씨와 산악인 엄홍길 씨, 제주도 출신의 배우 고두심 씨가 함께 했다.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해 말미오름을 넘어 알오름에 오른 80여 명의 참가자들은 시원하게 펼쳐진 초원에서 명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이미 제주올레 모든 코스를 한 번 이상 걸었다는 김주영씨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좋다"며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진정한 내 모습"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어 엄홍길씨는 김씨의 상상우화집 '달나라 도둑'에 수록된 '히말라야 사과나무'를 낭독하며 자신의 히말라야 등정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뼛속까지 파고들어 육신을 뒤흔들어대는 배고픔과 추위,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얼굴을 할퀴는 칼바람과 갈개치는 눈보라, 퉁퉁 붓고 터진 입술과 살갗, (중략)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두 사람을 껴안고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이겨낸 다음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히말라야 사과나무' 중)

 

고두심씨는 김씨의 우화 '달나라 도둑'을 낭독한 후 "제주도의 정신이 잘 살아있다"며 고훈식 시인의 제주방언시집 '할타간다 할타온다'에 수록된 시 '삼다도'를 낭송했다.

 

"제주도에 / 비바리영 냉바리영 어서시민 / 누게가 귀양온 어헐을 초약으로 달래멍 / 혼짓내 곤밥에 귀한 옥돔을 구워주멍 / 차마이 안아 주곡 달래곡 대 이서주곡 / 족보에 체암으로 이름을 어떵 올려주코."

 

고씨가 이어 표준어로 쓰인 같은 시를 낭독하자 제주도 사투리만의 감칠맛은 더욱 돋보인다.

 

"제주도에 / 밭일하는 처녀와 물질하는 처녀가 없었다면 / 그 누가 대역죄를 짓고 귀양 온 죄인의 / 맷독으로 썩는 몸뚱이를 민간약으로 치료해주고 / 그래도 차마 불쌍해서 같이 살면서 / 평생 귀한 쌀밥에 최고급 옥돔구이 요리를 / 기꺼이 바치면서 / 고향산천 잊으라고 안아주고 대를 이어주면서 / 입도조상이 되도록 헌신했을 것이냐."

 

낭독회 후 참가자들은 자연과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종달리 해안도로와 성산오일장 등을 거쳐 광치기 해변까지 총 15㎞를 함께 걸었다. 저녁에는 문학강연과 작품 낭독 등으로 이뤄진 문학의 밤도 마련됐다.

 

제주올레 녹색문학투어는 앞으로 정호승 시인과 소설가 박범신 씨, 배우 최불암 씨 등을 초청해 10-12월 세 차례 더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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