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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착한 시인이 들려주는 사람 사는 소리

함민복 에세이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소박하고 감성적인 시로 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온 함민복(47) 시인이 세 번째 산문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현대문학 펴냄)를 출간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연재하기도 했던 글들 속에는 강화도에서 홀로 시를 쓰며 살아가는 시인의 소박한 일상과 착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산문시 '눈물은 왜 짠가'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 등장하며 함 시인 작품의 주요 키워드가 된 '어머니'는 이번 산문집 속에서도 애틋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산문이 연재되던 지난 1월 어머니를 잃은 시인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상에 누워 있던 어머니와, 그리고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어머니를 향해 부르는 사모곡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머니 산소 코뚜레 빨리 풀고, 아 호스로 된 유선 말이예요, 코끼리 코 뽑아내고, 걸어서 안 되면 제 등에라도 업혀 쇠두레박 타고 저 평지로 내려가요. 네? 그러실 거면 아무 대답도 하지 마세요. 그러자고요! 그러자고요!! 아무 말 안 하셨으니까 분명 대답한 거예요."(85쪽)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내가 영정 앞에 서서 환하게 웃는 모습 보셨어요, 왜 그랬는지 아세요? 전에 명절날 고향에 가면 네 친구 누구는 양복을 쫙 빼입고 왔다고 하시며 부러워하셨잖아요. 그런데 살아생전에 양복 입은 모습 한 번 보여드리지 못한 일이 생각나서였어요. 상조회에서 빌려 입은 양복이었는데요, 그 모습이라도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104쪽)

 

그는 '시인'도, '함 선생'도 아닌 '함씨'로 불리며 살아가길 원하는 시인이지만, 안타까운 사회 현실을 접하면 가만히 앉아있지 못한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전경의 방패에 머리를 맞아 여전히 늘 머리가 띵하고 기억력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시인은 '폭력'의 위험성을 말하며 "밝음은 더 밝음으로만 이끌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한다.

 

"양심을 지펴 켜든 촛불은 막는다고 될 불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막아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사람들 가슴으로만 흐르다가 강이 되면, 그 불은 더 큰 힘이 되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촛불을 끄려면 촛불보다 더 밝은 세계를 열어 보이는 수밖에 없다."(281쪽)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고, 꾸미지 않은 시인의 글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다 '사람 살아가는 소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나는 철물점에 가자. 플라스틱 빗자루라도 한 자루 사놓자. 그리고 눈이 오면 어디 아무 데나 가서 길을 쓸자.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쓸면 사람 살아가는 소리가 나리라. 사람 살아가는 소리를 내자. 사람 소리를 내자. 그 소리는 눈의 고요, 눈의 침묵에게도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299쪽)

 

300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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