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수탈·번영·침체…'굴곡의 역사' 안고 흐른다…민물·바닷물이 섞이는 곳…철새의 쉼터
시도 사랑도 안 되는 날에는
친구야 금강 하구에 가보아라
강물이 어떻게 모여 꿈틀대며 흘러왔는지를
푸른 멍이 들도록
제 몸에다 채찍 휘둘러
얼마나 힘겨운 노동과 학습 끝에
스스로 깊어졌는지를
내 쓸쓸한 친구야
금강 하구둑 저녁에 알게 되리
/안도현의 시 '금강하구에서' 중에서
전북 북부와 충청도를 동서로 가로지른 금강(錦江)은 군산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발원지는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에서 반시간 남짓 올라간 신무산(897m) 정상 부근의 '뜬봉샘'. 작지만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 솟은 물은 수분(水分)마을 어귀에서 남과 북으로 나뉘어 각각 섬진강과 금강의 지류가 된다. 북으로 흐르는 물은 진안에서 용담호를 만들고, 진안고원과 덕유산에서 내려오는 구리향천·정자천·남대천·봉황천 등 여러 지류와 만나 대청댐으로 이어진다. 다시 갑천을 받아들이고, 연기를 거쳐 공주에 이른다. 이곳에서 백마강으로 다시 태어난 금강은 임천과 한산을 지나 서천과 군산 사이에서 서해로 흘러 '생(生)'의 끝을 바다의 시작에서 맞이한다. 숱한 역사의 슬픔과 문화의 기록을 담고 흐르는 금강 401km 여정은 전북 장수에서 시작돼 전북의 땅인 군산으로 흐르는 것이다. 귀소(歸巢)하는 천리의 물길, '기특한' 금강….
긴 여정으로 지친 이 강이 서해의 드넓은 품에 안기기 전, 잠시 머무는 곳이 금강하구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 철새들의 쉼터인 금강하구둑과 철새조망대, 오성산과 십자들녘, 채만식문학관과 진포시비공원, 이광웅 시비 등 볼거리와 체험거리, 느낄 거리가 많아 금강하구에 가면 누구나 일석다조(一石多鳥)를 경험할 수 있다.
▲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슬픈 역사
풍요와 수탈, 번영과 침체. 금강은 부침(浮沈)의 역사를 안고 있다. 고려와 조선 시대는 조운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물산의 집산지였지만, 봉건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반봉건농민항쟁이 가장 격렬하게 전개됐던 곳이며,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이 땅의 가혹한 착취가 자행되던 암울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라는 천혜의 조건은 오히려 지배층의 수탈을 촉진시켰고, 민중들의 강렬한 저항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군산항이 열리던 1899년 이곳은 가렴주구(苛斂誅求)의 탐관오리 대신 일본인들이 몰려오면서 슬픈 역사가 극대화된다. 밀물을 타고 들어온 일본배들이 이 항구에서 쌀을 실어갔던 것. 1909년 군산항에서는 우리나라 전체 미곡 수출량의 32.4%를 통관시켰고, 1933년 전국 쌀 생산의 53.4%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1934년에는 군산에서 현미가 200만석이나 반출되었다. 그 중 70%가 오사카나 고베, 도쿄로 운반됐다. 일본은 전북과 충남 일대에서 거둬들인 쌀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도로와 철도, 항구를 정비했는데, 1912년 익산∼군산선 개통과 1920년 장항선 개통으로 이어진 교통망은 금강하구의 역사를 더 분명히 했다. 그래서 금강하구의 웅장한 배수갑문에는 전라도 농부들의 한(恨)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만 같다. 지금도 문을 열기만 하면 금강 물길처럼 거센 기세로 농부들의 함성이 쏟아질 것 같다. 아우성, 아우성처럼 허연 쌀들이….
▲ 소설가 채만식과 채만식문학관
소설가 채만식(1902~1950)은 장편소설 「탁류」에서 금강을 '눈물의 강'이라고 불렀다. 이 작품에서 금강의 맑은 강물이 탁류로 변하는 과정은 우리 민족이 일본에 의해 몰락해가는 역사 과정을 의미한다. 작품의 시작부분에 언급된 금강은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 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라고 하였으며, 금강은 줄곧 '일제의 압박과 지배를 받는 민족의 표상'이며, 시대적 고통이 개입된 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의 삶과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채만식문학관(063-450-4467)도 탁류가 흐르는 금강하구에 있다. 문학관은 작가가 머리맡에 두고 싶었다던 원고지 20권 대신 둥지 튼 텃새와 월세 낸 철새들이 먼저 반긴다. 전시관은 항구도시와 백제문화권 이미지를 배 모양으로 구현한 현대식 건축물. 멀리 강 건너로 소설 속 초봉과 정주사의 고향 용댕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상여에도 생화를 썼으면 좋겠다"고 유언을 남길 만큼 꽃을 좋아했던 작가를 위한 국화 꽃밭이 있어 방문객들의 고단한 발품을 놓이게 한다. 군데군데 일본식 가옥들이 남아있는 월명동 주택가나 군산 화교소학교를 중심으로 한 거리 혹은 뱃고동 소리가 처량한 군산항 등지를 돌다보면 채만식과 「탁류」의 체취가 아스라이 느껴진다.
▲진포시비공원과 이광웅 시비
금강하구둑 시민공원. 금강호 배수갑문 가까이에 이광웅 시인(1940~1992)의 시비가 서 있다. '너무 맑아서 불온한' 시인과 묵중한 자연석 전면에 시인의 친필로 새겨진 시 '목숨을 걸고'. 포악한 시대는, 진짜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순결한 인간에게 진짜 목숨을 요구했다. 한 시대가 절로 저무는 게 아님을, 어둠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세상이 조금씩 열린다는 것을 시비는 묵묵히 전해주고 있다. 그의 시는 예전 시인의 웃음처럼 맑다.
빼곡하게 늘어선 시비들을 보고 싶다면 진포시비공원이 좋다. 진포시비공원은 2006년 12월부터 2007년 6월까지 7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군산시 내흥동, 채만식문학관과 멀지 않은 금강공원 내 건립됐다. 군산 출신 고은의 '노래섬'과 이병훈의 '고속도로변 까치둥지에서는', 부안 출신 신석정의 '빙하' 등 전북 출신 3명을 포함한 국내 유명시인 14명과 외국 유명시인 6명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 진포대첩지와 덕양정
'삶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 칙칙한 금강 하구 그 귀퉁이 / 아직 떨어지지 않은 저녁해에 얼굴을 맞대니'(박미숙 '금강하구-웅포에서' 중에서)
금강둑을 따라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이 코스는 북군산 방향으로 연결돼 있다. 이 강변도로에는 아담한 정자 덕양정이 있다. 마을사람들과 어부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익산문화원이 한 해 두 차례씩 용왕제를 여는 곳이다. 덕양정 한편에는 진포대첩에 관한 역사도 쓰여 있다. 웅포는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가 700여 척의 대규모 병력으로 공격해와 최무선이 최초로 화포의 위력을 보여 준 이른바 진포대첩지이다.
이 곳의 장관은 황홀한 낙조다. 늦가을이면 갈대 속 철새들과 오리떼가 노니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예전에는 고깃배들이 덕양정까지 드나들었지만 1990년 금강하구둑이 생긴 뒤 배 모습은 볼 수 없다.
/최기우(문화전문객원기자·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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