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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가 본 가리봉동 '옌볜타운' 모습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어떻게 기록되느냐에 따라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결정된다.

 

인쇄공장을 창작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서울 금천구 독산동 금천예술공장의 미술가 이수영ㆍ리금홍 씨가 조선족(중국 동포)이 모여 사는 구로구 가리봉동을 기록한 책 '가리봉 옌볜타운 3부작'을 기획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곳 가리봉동이 다르게 기억되길 바라서였다.

 

재개발을 앞두고 조만간 사라질 '옌볜타운'을 양고기 향신료과 청국장 냄새가 뒤섞인, 감각이 살아 있는 기억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가리봉동은 원래 1960년대 공단이 조성되면서 '공돌이.공순이'들의 땀과 애환이 담긴 곳이었다. 최근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하면서 IT산업의 메카로 부상했다. 양복과 넥타이가 청바지를 대체했다.

 

그러면서 도시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던 이곳 '쪽방촌'은 조선족의 쉼터로 바뀌었다. 조선족 음식점, 조선족 시장 등이 생기면서 조선족타운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곳은 오는 2015년 '디지털 비즈니스시티'로 재정비된다. 가리봉동이란 명칭은 '첨단동'으로 바뀐다. 2003년 가리봉동이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변화는 불가피했다.

 

두 작가를 가리봉동으로 이끈 것은 '양꼬치의 추억'이었다. 지난 여름 서울 아현동의 한 중국식당에서 고추장과 함께 나온 양꼬치가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중국 음식인 양꼬치와 한국의 전통 장인 고추장의 어색한 조합에서 이주문화의 복합성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들은 곧 가리봉동의 음식점을 찾았고, 조선족들을 만났다. 그네들의 먹을거리 맛보고 기록하고, 그네들의 삶을 청취했다.

 

진달래반점은 두 미술가의 '아지트'였다. 이곳을 드나들며 50대 초반의 조선족인 진달래식당 '사장님'과 마을 친구인 50대 중반 조선족인 '연구원 어머니'를 통해 조선족의 생활상을 들었다.

 

이곳 옌볜 거리를 누비며 조선족 음식을 먹으면서 일지도 꼼꼼히 기록했다. 어디서 어떤 음식을 먹었고, 이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맛은 어떤지.

 

두 작가의 상상력은 중앙아시아로까지 뻗어나갔다. 한국의 한 식당에서 조우한 양꼬치가 이곳에 오기까지 역정을 되돌아 본 것. 지난 4월 보름간 중국 옌볜 옌지시를 거쳐 신장 우루무치까지 양고기를 따라 여행했다.

 

이들은 여관이나 민박집을 얻고, 그 마을 시장에서 옷과 비누 등 생필품을 새로 사 그곳에 동화하고자 노력했다. 또 식당주인, 시장 상인들에게 물건을 사며 요리하는 법을 물어보고, 먹은 음식의 찌꺼기를 모았다.

 

이수영 작가는 "이주가 감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주의 삶이 진짜 어떤 것인지 짧게나마 경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가리봉동은 어떤 공간일까. 이 작가는 '익숙함 속의 불편함'이라고 표현한다. 외국에 나가면 자신이 한국인임을 느껴지는데 한국에 있는 조선족과 이야기하다보니 반대로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

 

이는 조선족 자체가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중국에선 소수민족이고 한국에선 외국인이다. 사회주의권에서 살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임금노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과 같은 말을 쓰고 있지만 어투는 북한식이다.

 

이 작가는 "가리봉동에서 조선족이란 존재는 단일 민족, 대한민국, 그런 것에 질문을 던진다"며 "예술이 기성의, 평온한 것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면 조선족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가리봉동, 옌지시, 우루무치 등에서 조선족과 나눴던 대화, 그들의 음식, 생필품 등을 수집해 정리하고 있다. 가리봉에 대한 감각들의 기억을 모아 '가리봉 옌볜타운 3부작'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 2월 가리봉동 조선족 식당에서 만난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가리봉동 진달래 반점'이란 책을 냈다.

 

양고기를 따라 신장 우루무치까지 거슬러 올라간 여정을 기록한 '서쪽으로 다시 오백리를 가면'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또 3부에 해당하는 전시회 '장백산 고사리나물'을 다음달 금천예술공장에서 연다.

 

이 작가는 "가리봉동이 산업역군의 산실, 디지털 단지가 아닌 쪽방과 음식, 허름한 식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우리의 기록작업이 주류 기억과 다른 질감과 온도를 지닌, 주류에 대한 '카운터 기억'으로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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