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되찾은 '국권의 상징'…정신적 상처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서울 '광화문'이 참으로 오랜만에 복원돼 8월15일 공개됐다. 그 동안 '광화문'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온 겨레에게는 가슴 설레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광화문'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증인이다. 1910년 8월 29일로 한국이 일본에게 강제로 병탄된 순간, 그 문은 닫혔고, 그 후 1927년에는 '조선총독부'청사 건립으로 인하여 해체되었으며, 한국전쟁 때는 폭격기의 폭격으로 문루(門樓)가 탔고, 4·19혁명과 5·16쿠데타도 목격했다. 그래서 '광화문'은 단순한 궁성 정문(正門)이 아니라 우리의 파란 많은 역사 과정을 우리와 함께 겪은 나머지 우리의 피붙이 같은 느낌을 주어왔다. 그 정문을 허무는 망치 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것과 같았고, 그것이 불에 타면 우리의 피부가 타는 느낌이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탄된 순간부터 '광화문'은 조선조 궁궐을 떠나 피압박민족의 상징이 되었다. 고종과 순종은 대신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강압에 결사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권의 상징인 '광화문'의 존엄성을 땅에 떨어뜨렸던 것이다.
'광화문'은 궁성의 다른 세 개의 문과 달리, 국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경술 국치 이후에도 말썽에 휩싸였다. 첫 번째 말썽은 1923년 일제가 '광화문' 뒷 마당에서 '공진회(共進會)'를 개최함으로써 초래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상품박람회'인데, 그 때 일제는 '광화문'을 온통 멍석으로 둘러싸버렸던 것이다. '광화문'을 아끼는 조선인에게 그 누추한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테지만, 그 중의 한 사람이 작가 염상섭이었다. 그는 「세 번이나 본 공진회」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쓴다.
일본의 柳宗悅군이 와서 [광화문을]보았다면 멍석에 싸인 잔해(殘骸)를 붙들고 방성통곡(妨聲痛哭)이나 아니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柳宗悅(야나기 무네요시)은 한국미술을 사랑하고 아낀 일본의 미술학자이지만, 조선조 궁전의 정문이 '멍석'으로 너절하게 둘러싸인 모습을 '시체'에 비유했을 때의 염상섭의 울분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자 일제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을 때 '광화문'철거에 착수함으로써 더 큰 말썽을 일으켰다. 가령 야나기는 「소멸시키려고 하는 조선 건축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강제로 사라져가는 '광화문'을 슬퍼하면서 총독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예상 외의 항의에 부딛치자 일제는 헐어버린 '광화문'을 궁궐 동쪽의 '건춘문(建春文)'북쪽에 옮겨지었다. 결코 가서는 안될 어색한 위치에 선 그 '광화문'은 이전의 위세와 생명력과 미(美)를 잃고 있었다. 염상섭은 일제 강점기의 유명한 장편소설 「삼대」에서 그 '광화문'을 쓸쓸한 벌판의 '유령'같다고 비꼬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을 것이다.
'광화문'은 8·15광복 후에 수십년 동안 방치되고 잊혀져 왔었는데 1968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불완전하게나마 중건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었지만, 또 한번 말썽이 일어났다. 문화재청에서 '광화문'의 '한글 현판'을 본래의 '한자 현판'으로 바꾸려고 하자 '한글 학회'에서 들고 일어나 반대한 결과 '한글 현판'보존론과 그 반대론이 충돌햇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부는 정통성이 없는 통치기관이어서 '광화문'철거는 야만적 횡포였다. 그러나 '한글 현판'의 정통성이라는 문제는 예술적 정통성의 문제다. 모든 문화유산으로서의 예술품의 복원은 원형대로 해야 하며, '광화문'의 경우 그 '한글 현판'은 '건축문'을 비롯한 세 개의 궁성 문의 '한자 현판'과 조화되지 않는다. 문화유산과 관련된 역사의식은 전통의식이다. '한글 학회'사람들에게는 전통의식이 없다.
이렇듯이 말썽이 반복되어 온 '광화문'은 침묵을 지켜왔다. 너무나 사연이 깊은 침묵이다.
민족의 고난을 안고 본의 아닌 말썽도 일으킨 '광화문'이 경술 국치 100주년 8월 15일에 '한자 현판'을 달고서 겨레에게 공개됐다. 참으로 감동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그 복원 소식을 듣는 기쁨은 착잡하다. 망국한(亡國恨)을 안고 한국전쟁의 피해까지 받은 '광화문'복원의 기쁨은 상처입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처를 지울 수는 없고 지우려고 할 것도 없다.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그 상처를 정신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광화문'에 대한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 이보영(문학평론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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