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풍미 살아있는 든든한 서민국밥…돼지머리·내장 넣은 뽀얀 국물 담백
2008년 11월 익산의 옛 지명인 '이리'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그러나 세인들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막을 내렸다. 이리역 폭발 사고의 추모 성격이 강했고, 청소년 관람 불가를 달고 나온 작품이라 애초 흥행과는 거리를 둔 작품이었다.
영화를 본 뒤 '지독한 슬픔만 있어서 무겁고 답답하다', '희망적인 메시지 전달에는 실패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이리역은 1915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1977년 11월 11일 일어난 폭발 사고로 부서진 뒤 이듬해 신축됐다. 익산역으로 이름을 바꾼 건 1995년 일이다.
지금은 저탄소 녹색 성장의 핵심인 KTX 정차역이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첫 번째로 건설된 호남선 역사 중 하나로 일제 수탈의 전진 기지였던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다.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원도심 중앙시장은 익산역에서 불과 500여m 떨어져 있다. 시내 중심과도 가까워 큰 호황을 누렸던 이곳의 대표 먹을거리는 순대국밥이었다.
힘 쓰는 일을 주로 하는 시장 사람들에게 순대국밥처럼 저렴하고 든든한 위안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앙시장 2층 절반이 순대국밥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재래시장 몰락과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지금 중앙시장에서 순대국밥을 취급하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렇다고 명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문을 연 지 40년이 넘은 '정순순대'(정순집)가 대표적이다.
이곳을 꼽은 이유는 전형적인 토렴(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 방식으로 국밥을 말기 때문이다. 토렴 방식은 뚝배기에 팔팔 끓이는 방식에 비해 모든 재료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뚝배기에 끓여 나오지 않는 까닭에 돼지 내장 냄새를 잘 다스려야 하고, 당연히 선도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밥에는 푹 고은 돼지 머리와 내장이 들어 있을 뿐, 순대는 들어 있지 않다.
뽀얗고 맑은 비주얼은 부산 돼지국밥을 연상케 하지만, 그보다 더 고소하고 담백하다. 채반에 올려진 국수 사리는 순대국수를 만드는 데 쓰인다. 사리가 보이지 않아도 주인에게 '순대국수 주세요'라고 하면 생면으로 흔쾌히 말아 준다.
언젠가 공중파 맛집 프로그램에 노출됐고, 뚝배기에 팔팔 끓여 달라는 손님층 때문에 혹여 토렴의 그윽한 맛이 사라질까 걱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 영업 시간: 오전 5시 30분∼오후 9시(연중무휴)
▲ 순대국밥 5000원, 순대국수 3000원, 안주고기 5000원∼7000원
▲ 위치: 익산시 창인동 1가 103-2, 원도심 신세대길에서 중앙시장 들어가는 입구
▲ 전화: 063-854-0922
김병대(블로그 '쉐비체어'(blog.naver.com/4kf)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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