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촌놈의 1인극 공연이 벌써 1천100번 됐어요. 이거 제정신 아닌 거 맞죠? 하하하."
충북 청주에서 20년 넘게 가난하고 배고픈 토박이 연극쟁이로 살다가 우연찮게 시작했다는 1인극이 1천100회를 돌파했다. 창작 1인극이 1천회 넘게 장수하는 건 국내 공연계 현실을 감안하면 극히 드문 일이다.
유순웅(48)씨가 그 주인공이다.
2004년 청주 소극장에서 출발해 전국을 돌며 공연해 온 '염쟁이 유씨'가 지난 10일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1천102번째 막을 올렸다.
유씨는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충청 지역 사투리가 섞인 느릿느릿하고 구수한 말투로 1인극을 고집해온 이유와 지역 연극인으로 사는 애환,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다.
'염쟁이 유씨'는 일흔살 염쟁이가 관객에게 염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생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도록 하는 연극. 유씨는 주인공인 염쟁이 노인과 동네 건달, 장례업체 호객꾼 등 1인 15역을 소화한다.
"고향인 청주에서 20년 동안 연극만 했더니 밑천이 다 떨어진 것 같더라고요. 1인극을 해보자 싶어서 후배가 써준 대본으로 시작한 게 제 인생을 바꿨죠. 지금 생각해도 제정신 아닌거 맞아요."
2년 동안 청주에서만 알아주던 연극이 시쳇말로 '빵 터진' 건 2006년 서울 공연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학로에서 연일 매진 행렬이 이어졌고 인터뷰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제게는 기적같은 일이었죠. 청주에서는 관객층이 많지 않아 늘 관객에 대한 갈망이 있었걸랑요. 서울에는 이렇게 많은 관객이 있다니… 그 다음엔 전국 곳곳을 돌며 공연했어요. 시골 군민회관, 교도소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다녔죠."
한 번 뜨면 더 큰 무대로 눈을 돌릴 법도 한데 청주를 떠나지 않고 '염쟁이 유씨'를 6년 넘게 고집해온 이유는 뭘까.
"관객과 만나는게 좋았어요. 염쟁이 얘기를 듣고 열심히 살 용기를 얻었다고 해주시면 오히려 제가 감사했죠. 청주에서 관객 10명 모아놓고 연극하던 시절에 너무 서러움을 느껴서 그랬는지 관객이 많을수록 좋아요."
하지만 한때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말이 1천번이지 지칠 때가 왜 없었겠어요. 똑같은 공연만 1천번 하는건데… 하지만 그때마다 관객에게 희망을 주는 공연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무대에 섰어요. 무엇보다 상처받았거나 살 의지를 잃었던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러 올거라고 믿었습니다. 거꾸로 관객이 제게 힘을 준 거죠."
스스로 '촌놈'이라고 부르는 유씨는 올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큰물'에 뛰어든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빗자루, 금붕어되다'(감독 김동주)가 오는 30일 전국에서 개봉하는 데 이어 이연우 감독의 차기작 '내 사랑 예이츠'(가제)에도 조연으로 캐스팅된 것.
혹시 연극 무대를 떠나려고 '변심'한 게 아니냐고 묻자 "아마 아닐 걸요"라는 느긋한 답변이 돌아왔다.
"배우로서 연극이든 영화든 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좀 더 대중적인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죠. 평생 지역 연극쟁이로 살 생각인데 그러려면 제 얼굴을 더 알려야 하걸랑요. 제가 다 계산을 해봤는데 서울에서 청주로 제 연극을 보러 2천명만 내려와도 밥 굶지 않고 무대를 지킬 수 있어요. 지방 연극은 3류라는 오해가 아직 많긴 한데… 결코 그렇지 않걸랑요. 그 걸 알리려면 좀더 유명해지고 싶어요."
그렇다고 유씨가 '염쟁이 유씨' 무대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오는 11월께 다시 대학로에서 공연해요.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 다른 배우와 트리플 캐스팅으로 하걸랑요. '염쟁이 유씨'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게 이번이 처음이긴 한데 믿고 맡겨야죠. 더 잘 될 것 같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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