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4 06:39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⑥절망의 구-소설가 이준호

'지금, 여기' 가 답답하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절망의 구」(예담)를 쓴 소설가 김이환씨는 말한다.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불안에 시달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늘 무언가에 쫓기지만 그 공포의 정체는 찾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앞만 보고 달리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성찰이나 반성 없이 스프링벅이나 누 떼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그 끝엔 허탈과 좌절, 심지어는 파멸과 파탄이 있을 뿐이지만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현대인들의 불안감과 중압감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외계생물체의 무차별 공격, 뱀파이어나 좀비들의 출현, 치료가 불가능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창궐, 심지어는 요즘 영화의 단골 주제인 복수까지. 이른바 '억압된 것의 회귀(귀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프로이드가 신경증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인데, '억압된 것'은 반드시 무의식을 뚫고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현대인의 억압되고 불안한 심리를 '구(球)'를 통해 표현했다. '높이가 2미터 가량 되고 표면이 금속처럼 매끄럽고 완전히 검은색'인 구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정체불명의 '구'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흡수한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물 위로도 이동한다. 자주포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둘로 분열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 구의 생김새에 대해 여러 차례 묘사를 반복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구가 금속 같아 보이지만, 금속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끝내 구의 성분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아니, 밝힐 수 없다. 이것은 현대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을 분명하게 알 수 없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구'는 현대인들이 가슴속에 하나씩은 품고 있는 불안의 현현이다.

 

주인공은 쫓기는 도중에 가끔씩 텔레비전을 확인한다. 그럴 때마다 화면엔 '절대로 한 장소에 머물지 말고 지속적으로 이동할 것'을 권하는 자막이 떠있다. 현대인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시대상의 비유적인 표현인 것이다.

 

소설은 서른두 살의 평범한 영업사원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극심한 혼란에 빠진 사회를 스케치하듯 보여준다. 주인공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남자'라는 익명으로 처리된다. 이 '남자'는 이 글을 쓰는 '나'이기도, '당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구성원 전체이기도 하다. 남자는 소외되고 고립되고 나약하고 단절되고 파편화되고 왜곡된 삶을 사는 현대인의 표상이다. 작가는 쫓기는 남자를 통해 우리들에게 왜곡된 소비자본주의, 세속화된 종교, 훼손된 공동체의식, 극단적인 이기주의, 집단히스테리를 차례로 경험하게 한다.

 

언뜻 보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나, 영화로 더 유명한 리처드 매더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지만, 결말은 다르다. 이 소설의 결말은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소설은 끝났을지 몰라도 현실은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을 조심하게 젊은이."로 시작한 소설은 "남자는 도망친다."로 끝난다. 남자는 지금도 어디선가 도망치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나이기도, 당신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가 답답하고 불안한 사람은 이 소설의 일독을 권한다.

 

▲ 소설가 이준호씨는 경북 영일 출생으로 1993년 「전북일보」로 등단, MBC 창작동화 장편동화 부문 대상(2001)을 수상했으며, 장편동화「할아버지의 뒤주」(2007)를 출간한 바 있다. 현재 군산대에 출강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email protected]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