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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거리에서] 위대한 약속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이병률의 '찬란' 전문

 

바람이 달라졌다. 나무 가지 끝이 달라졌다. 매화나무 꽃망울이 달라졌다. 눈이 녹는 모습이 달라졌다. 땅바닥으로부터 녹는다. 땅 기운 때문이다. 다 달라진다. 새로워진다. 사람들의 몸짓도, 얼굴빛도, 손짓도 발짓도. 다 달라진다. 입춘이다. 봄이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저 위대한 약속, 저 엄동의 혹한을 이기고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봄이 온다.

 

/ 김용택(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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