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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삶의 현장, 귀농마을을 가다

준비된 귀농, 주민들과 교류하며 공동체문화 적응…자녀교육 대안찾기 교류도

'귀농 3세대'에 속하는 위진석(52) 송광섭(49) 장종혁(53) 김영권(41) 조영호(42)씨(왼쪽부터)가 지난 6일 완주 고산면 율촌리 일대 송광섭씨의 흙집 앞에 걸터 앉아 귀농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화정([email protected])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 서봉리, 어우리, 그리고 경천면 가천리 일대….

 

이곳이 새로운 귀농·귀촌마을로 꼽히는 것은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생태마을인데다, 폐교 위기를 딛고 혁신 모델로 자리잡은 완주 삼우초등학교 덕분이다.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자연 교육에 매료된 사람들, 그리고 노후 보장이 안되는 도시에서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 일대에 몰려 있다.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한 마을에 모두 모여 살지는 않지만 삼우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큰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처음엔 한두집씩 귀농귀촌 세대가 생기더니 이젠 이 일대에서 귀농인, 귀촌인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귀농·귀촌의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완주구 고산면에서 귀농운동본부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송광섭씨가 트렉터로 밭을 일구고 있다. 이화정([email protected])

길을 잘못 들었다. 자동차 한 대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들길을 따라 되돌아 나오기를 여러 번.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슬레이트 지붕, "안 보여요? 차 소리가 들리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30m도 안되는 거리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송광섭(49)씨를 발견했다. 송씨는 얼마 전 자동차도 없애고, 온전한 '농군'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와 인연을 맺어 알음 알음으로 귀농한 이들이 손을 꼽는다. 김영권(41) 위진석(52) 장종혁(53) 조영호(42)씨까지 이곳에 온 지 1년 미만부터 5년까지 된 '귀농 3세대'에 속한다.

 

'귀농 1세대'가 생업을 바꿔 농사를 짓겠다고 들어온 세대라면, '귀농 2세대'는 '자기만족형' 문화예술인들이 많았다.

 

'귀농 3세대'는 생태적 삶도 일구면서 마을을 위해 뭔가 함께 하려는 이들이다.

 

완주 고산면 일대 귀농운동본부 지원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는 송광섭씨는 "아들이 아토피가 심해서 흙집을 찾다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며 센터를 통해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집을 알아봐주고 이웃들을 소개해주는 일 등을 도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귀농에 대한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귀농은 직업을 바꾸거나 집을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 삶을 혁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 고산면 어우리 일대에 들어온 조영호씨는 귀농 준비만 3년이 걸렸다고 했다. 시험 삼아 농사도 짓고 주민들과 안면을 익혀가면서 삼남매를 '산골 유학'시키겠다고 마음 먹었다.

 

"교육 문제 때문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진학하기 전에 와야 했어요. 학원을 운영했었는데,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 때문에 정서적인 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봐서 회의가 들었습니다."

 

삼우초에서 방과후 교사를 맡고 있는 조씨는 "삼우초등학교에서 체험 중심에 특기적성교육과 동아리가 활발히 이뤄지다 보니, 도심의 부모들이 주소지를 옮기면서라도 이곳에 보내고 싶어한다"며 "자녀 교육 문제를 시골에서 해결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위진석씨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교육을 받은 아내의 권유로 개인 사업을 접고 경천면 가천리로 내려온 서울 토박이다. 3년째 밤낮없이 볕에 그을려 12231m²(3700평)이나 일구는 '머슴'이 다 됐다. 친구들처럼 아파트 경비로 여생을 보내기 보다는 몸은 고되더라도 자연과 부대끼면서 새로운 노후를 개척해나가고 싶었던 것.

 

"귀농이 성공한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은행 잔고가 줄고 있어 안타깝지만, 10년을 바라보고 온 것"이라고 답변했다. 여기서 귀농인들이 고민하는 삶의 혁명에 대해 조영호씨가 보충설명을 이어갔다.

 

"저도 여기 올 때 아주 치밀하게 준비한 것은 아니에요. 10년만 지나면 자리가 잡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죠. 도시에서는 10년 후면 '퇴물'이 될 텐데, 여기서 빡빡 기면 먹고 살 수는 있겠다 싶었거든요. 도시의 부품처럼 살다가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경천면 가천리에서 6년 째 곶감, 복분자, 콩나물 등을 재배하고 있는 장종혁씨도 "농사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인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답게 사는 이곳이 더 낫다"고 동의했다.

 

4년 째 고산 서봉리에 정착하고 있는 김영권씨는 "하지만 '귀농'과 '귀촌'은 다르다"고 선을 그은 뒤 "귀농에 대한 낭만은 버리고 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귀농'은 농사를 지으면서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생활인 반면 '귀촌'은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는 은퇴자 혹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 산골에 옮겨 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빠르면 3년, 느리면 5년 내에 귀농을 했다, 안했다가 결론 납니다. 꿈을 갖고 오더라도 만만치 않은 동네거든요. 귀농이 좋겠다고 선뜻 따라나섰던 가족들도 처음엔 불평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무작정 '농촌행'을 하기 보다는 무엇보다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차분히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마을의 대소사를 협업하는 공동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광섭씨는 "연고가 없거나 농사에 익숙하지 않거나 경제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으면, 시골에 던져진 것과 같다"며 "결국 이곳에 대한 해답은 공동체 생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종혁씨도 "일부 귀농인들이 농사를 못 지어서 나가는 게 아니라, 공동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라면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경험해볼 것을 권유했다.

 

"농촌에서는 모든 생활이 다 바뀝니다. 특히 사회생활에 지친 남자들이 주로 귀농을 원하는데, 심각하게 묻습니다. 부인과 24시간 같이 생활해야 하는데 괜찮냐고요. 어떤 부부는 24시간 붙어서 계속 싸워요.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만 성공적으로 삶을 '혁명'할 수 있습니다.

 

송광섭씨에 이어 조영호씨도 '버리는 것'만큼 강조하는 귀농의 비법은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일대에 사는 아줌마들은 이웃 어른들한테 김치 담그는 법도 배우고, 메주 띄우는 법 등을 배운다. 역으로 도시에서 익힌 기술이나 지식은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김영권씨는 "농촌에서 살아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역 주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여기에 살더라도 귀농에 실패할 수 있다"면서 "귀농을 하기 전에 교육도 받고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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