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화가 이기홍씨, 18년만에 고향서 개인전강렬한 메시지 대신 삶이 녹아든 풍광 담아내
1980년대는 민중운동의 폭발기였다. 민중의 이름을 내건 문학·미술·음악 등이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 시대의 아픔과 함께 했다. 하지만 그 많던 민중문화 운동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몇몇은 생계의 막차를 타고 판을 떠났고, 또 몇몇은 문화비평가로 직함을 바꿔 달고 새 시대에 안착했다. 그러나 걷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길은 끊기지 않는 법. 2년 전 전주로 귀향한 민중화가 이기홍(52)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렸을 때 사고로 왼쪽 팔을 다쳤다. 한 팔로도 천천히 제 마음에 차는 그림들을 그렸다. ‘동학농민혁명 10주년 기념전 - 새야 새야 파랑새야(1994)’를 기점으로 작업에 칼끝처럼 열정이 돋아있을 무렵 전주 동문거리 작업실을 떠났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로부터 17~18년 간의 공백기. 고향인 전주에서 고단한 세월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있다.
전주 서신갤러리(관장 박혜경)가 초청해 열고 있는 이기홍 개인전‘대숲 바람’은 절대 꺾이지 않고 이 땅을 지키고 살아가는 농민들의 울림을 깊이있게 담아낸 자리다. 강렬한 메시지로 민중을 선동하던 그림 대신 이제는 편안해진 들판의 옥수수와 연기 속 서있는 아낙들을 관조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혼불’의 배경인 대길마을을 보면 대숲이 나와요. 대숲은 어느 집에나 흔했거든요. 혁명 때엔 대나무는 죽창 역할도 했지요. 아픈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숲바람에 실려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 - 옥수수’는 한·미 FTA로 인해 고통의 전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담은 작품. 그는 “바람에 나부끼는 옥수수를 보면서 죽음을 앞둔 마지막 떨림을 보는듯 했다”고 말했다. 삽을 든 농민들을 통해 밥 한 숟가락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그의 그림에서 이젠 노동보다 인간이, 이념보다 삶이 보이는 듯 했다.
△ 이기홍 개인전‘대숲 바람’ = 6일까지 전주 서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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