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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책, 한지…새롭고 독특한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 '직지'

조각가 엄혁용 개인전 '직지, 새로운 천년의 꿈을 꾸다' / 외규장각 의궤 반환 이뤄낸 故 박병선 선생 위한 오마주

 

조각가 엄혁용(51)은 늦깎이 장가를 갔다. 뒤늦게 얻은 두 아들 태신·태민을 금쪽같이 아낀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을 마시다가도 밤 9~10시만 슬그머니 사라진다. 잠에 들기 전 두 아들 얼굴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아이들을 작품에 담아오던 그는 아들들이 눈만 뜨면 찾는 책을 작품에 접목시키고 싶었다. 지난해 故 박병선 박사의 타계 소식을 들은 그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를 책과 연계시키는 데로 나아갔다. 박병선 선생을 위한 오마주 격인 열다섯 번째 개인전‘직지, 새로운 천년의 꿈을 꾸다’를 연 그는 “그럴싸한 사기(?)를 친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전주 공유갤러리에서 연 나무를 소재로 한 전시가 조형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 전시는 나무를 다루되 기능성·실용성에 감안한 전시로 변화를 줬다. 자신의 두 아들처럼 책을 좋아하는 혹은 책을 더 가까이 하고픈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규모 철 조각을 해왔던 그에게 나무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흠집이 나 버려진 나무를 구해 나무의 모양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톱질을 했다. 제자들이 “좀 더 고민하고 자르시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감대로 밀고 나갔다. 급한 성격 덕분에 작업은 6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3m도 넘는 등걸에 고서를 불규칙적으로 꽂아놓는다든가, 다양한 책들을 꽂아놓은 고풍스러운 책장 등이 대다수인 이번 전시에는 총 19점이 출품됐다. 나무에 난 흠집을 도려낸 뒤 상형문자를 새기고 색을 입혀  “상처 난 자리가 글자가 되게끔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나무로 만든 책들이 많다. 잉크까지 번진 느낌을 살려 오래 돼 닳은 실제 책 같다. “고서의 끈 매듭이 5번 된 것을 감안해 다섯 곳을 음각으로 깎아 실리콘 등으로 채우는” 등 섬세한 곳까지 신경을 쓴 덕분이다.

 1회 때부터 빠짐없이 등장한 탁자는 이번에도 내놓았다. 식탁용으로 제작했던 탁자에 나무를 얹어 책들을 꽂아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2년에 꼭 한 번 개인전을 하겠다”고 스스로와 한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온 그는 당분간 나무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나무가 주는 따뜻한 질감, 가볍고 오래가는 한지의 매력 등은 금속·도자 작업을 해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 이어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도 이어진다. 이화정기자hereandnow81@

 

 △ 엄혁용 열다섯번째 개인전‘직지, 새로운 천년의 꿈을 꾸다’ = 23~29일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JMA. 31일~6월6일 전주 우진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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