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전수조교 있어야 중요무형문화재 선정' 원칙 고수 / 동초제 사라질 위기…"판소리 모르는 사람들이 심사해 문제"
춘향가의 김연수 바디가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심청가의 정권진 바디와 적벽가의 박봉술 바디도 마찬가지다. 이는 문화재청이 판소리 다섯 바탕을 대표하는 전수조교가 있는 경우에만 중요무형문화재(이하 보유자)로 선정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다시 불거진 사안이다. 지난해부터 문화재청이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 관련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왔으나, 계파와 유파의 갈등이 심한 일부 분야의 경우 보유자 지정을 꺼린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보유자 지정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보유자 지정을 관할하는 각 분과별 문화재위원회는 현재 판소리 바탕을 대표하는 보유자를 선정해오고 있다. 문제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일부 바디의 경우 조교가 없어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춘향가의 경우 현재 김소희 바디와 정응민 바디만 지정돼 있는 데 반해 김연수 바디는 조교 없이 이수자 이일주 명창만 존재한다.
특히나 임방울 명창과 비견된 김연수 명창은 정정렬 소리를 모범으로 삼으면서도 판소리계 신소설을 차용해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한, 동편제·서편제 틀로는 전혀 설명이 안되는 귀한 소리다. 오정숙 명창이 걸출한 제자들을 키워낸 덕분에 '김연수 소리는 곧 전북 판소리'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제시한 보유자 선정 방식대로 하면 동초제는 앞으로 보유자 지정이 어렵다. 살아 생전에 오정숙 명창 밑으로 전수조교 후보만 있을 뿐 전수조교는 없기 때문이다.
이재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담당자는 "판소리 지정 당시부터 판소리 다섯 바탕에 따른 보유자를 복수로 인정해왔다"면서 "그러나 조사 대상을 전수교육조교(조교 부재 시 이수자)로 한정하고 있어 전승환경의 경직성 혹은 인정되지 않은 기·예능이 소멸될 우려가 있다는 문제점은 제기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불합리한 보유자 지정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문화재위원회가 판소리 이해가 적은 이들로 구성 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13명)에는 전통음악 관련한 최태현 중앙대 음악대 학장이 유일하고, 문화재전문위원(20명)에서는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김영운 한양대 교수, 김응기 동국대 교수, 배연형 동국대 교수가 국악 전공자로 구성됐다. 하지만 배연형 동국대 교수를 제외하곤 정악 전공자 위주여서 심사위원들이 판소리에 관한 이해도가 낮다.
이재필 담당자는 "단순히 문화재전문위원들의 의견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계의 목소리를 취합해 보유자를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박봉술 바디의 적벽가 조교 후보로 20년 넘게 있는 김일구 명창은 "국악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심사하니 이런 꼴이 된다"며 분통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판소리 전문가들은 "문화재청의 입장이 원칙적으론 맞는 것 같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전수조교도 제대로 지정하지 않고 무형문화유산을 방치하는 꼴"이라며 "문화재청이 제대로 못할 거면 차라리 민간에 맡겨서 전문성을 높이는 게 낫다"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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