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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마라"

오항녕 전주대 교수'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출간

   
 
 

조선시대 내내 판단이 흐린 임금으로 불렸던 광해군(1575~ 1641). 그러나 20세기에 일본 학자 이나바 이와키치에 의해 광해군은 실용주의 외교로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군주로 둔갑됐다.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51·前 본보 문화전문시민기자)가 출간한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너머북스)은 바로 이런 간극에서 나왔다.

 

먼저 씁쓸한 저자의 결론. 그는 "광해군의 부활은 역사 왜곡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했다. 그러나 "나라를 망치는 과정을 알면, 나라를 일으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듯" 저자는 이 책에 대해 '광해군을 폐위시킨 뒤 이 땅에서 살아야 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위로, 역사적 연대의 편지'라고 적었다.

 

근대주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 즉 "유럽 계몽주의자에게 봉건사회는 암흑인 것처럼, 조선은 빨리 지나갔으면 좋았을 해체기로 인식하는 류"에 '딴지'를 걸고, 시스템의 작동·사람들의 비전과 욕망·사건의 우연성을 따져 촘촘한 읽어내기를 시도하는 이 책은 자타가 공인하는 '실록 전문가'답다.

 

저자는 묻는다. 광해군 15년을 왜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하느냐고. 그리고 답한다. 잘못을 깨달아도 노선을 절대 바꾸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바로 그런 광해군의 실패를 세 시기로 나눠 그려냈다. 즉위부터 계축옥사(광해군이 영창대군 및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를 감행한 시기(1기·즉위~1613), 다른 정치세력은 일절 배제시키고 눈과 귀를 닫았던 아집의 정치(2기·1613~1618), 불안한 정치로 측근들도 등을 돌리는 무능의 사태(3기·1618~계해반정)다.

 

새로운 정치의 초기 광해군이 정인홍 등 북인 정치 기반을 축소시켜나간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그 시기 민생은 정말 암담했다. '광해군은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했으나, 지주들이 반대해 못했다'고 알려진 사실을 전면으로 뒤집은 이 책은 오히려 계축옥사가 대동법을 통해 민생 안전을 추진하려는 세력을 몰아내고 궁궐 공사를 선택했다고 반박한다. 선조부터 짓기 시작한 창덕궁이 완공되고 나서야 창경궁·경운궁을 다시 건립하면서 쓴 재정은 전체 예산의 15~25%. 여기에 건립비 충당을 위해 면죄부까지 주는 '공명첩'을 뿌렸으며, 이듬해 명나라 요청에 의해 준비 없는 파병으로 나라가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이뿐만 아니다. 국정의 철학을 공유하는 국무회의 성격에 가까운 '경연'은 뒤로 하고 왕이 직접 국문에 참여하는 친국에 매달렸으며, 대개 1~3년 내 편찬되는 '선조실록'을 10년이 지나서야 내놓아 공정성 면에서도 의구심을 샀다. 이 과정에서 임해군 옥사부터 김직재 옥사·계축옥사·영창대군 증살·인목대비 폐위까지 이뤄졌다.

   
 

'무기력'이 계속되면 '무능'이 된다. 광해군은 정책과 사안에 대한 판단 능력을 상실한 차원을 넘어 아예 손을 놓는 상황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를 통해 "어리석음으로부터 탈피하라. 그래야만 어리석은 정치의 익살극을 끝낼 수 있다"고 일갈한다. 그러나 우리네 정치판은 아직도 국민들을 완벽하게 속이고 사실을 왜곡한다. 이것이 광해군의 부활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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