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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시인이 본 키요자와 만시 스님 에세이집 '겨울부채' - 나를 잃어버림으로써 얻는 자유

'나는 쓸모없다' 진정한 깨달음…깨어있음이란 충분히 만족하는 것

'겨울부채'는 하네다 노부오가 엮고 이 아무개가 옮겨 베낀 책으로 키요자와 만시라는 스님의 에세이집이다. 아홉 편의 수필이 들어있는 이 책은 스님의 글을 목사님이 육필로 옮겨 쓴 책이다. 활자로 인쇄하지 않고 한 자 한 자 베껴 쓰고 싶을 만큼 줄줄이 명구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뒤채던 필자의 젊은 날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던 책이다. 키요자와 만시의 핵심사상은 '자유'(freedom)다.

 

'자유는 자신을 구속하는 사물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림(喪我)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절대굴종(absolute submission)과 나란히 성립되는 절대자유(absolute freedom)인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자유와 남의 자유가 충돌하는 이유는 우리의 자유가 절대굴종과 나란히 성립되는 절대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깨어있음에서 오는 절대자유는 그 어떤 처지에서도 남의 자유와 기꺼이 화합하여 충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깨어있음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충분히 만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苦)의 원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모든 괴로움을 인간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겪는다. 실패라는 것도 객관적 실재로서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며, 우리가 마음속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그 때문에 짓눌림을 당할 때에만 실패한다.'고 한다.

 

키요자와 만시가 말하는 '도의적인 삶'(a moral life)은 아주 간단하지만 어렵다. '생선을 즐겨 먹지만 생선이 없다 해서 불평하지 않는다. 재물을 즐기되 그 재물이 없어져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높은 벼슬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 아까워하지 않는다. 지식을 탐구하되 남보다 더 안다고 해서 뽐내지 않고 남보다 덜 안다 해서 주눅 들지 않는다.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산 속에서 밤하늘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드는 것을 경멸하지 않는다. 좋은 옷을 입지만 그 옷이 더러워지고 찢어져도 태연하다. 이 같은 품성으로 신심을 얻은 사람은 자유인이다. 아무것도 그를 가두거나 가로막지 못한다. 이런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도의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겨울부채'라는 말은 후한 시대의 학자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에 '쓸모없는 재능을 내세우고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권하고 겨울에 부채를 내미는 것과 같다'라는 하로동선(夏爐冬扇)에서 나온 말이다. 키요자와 만시는 자신의 호를 '하로동선'(夏爐冬扇)에서 따와 '로센'(爐扇)이라 하였다. 자신의 노력이 아무 쓸모없다는 뜻이다. 절대자 앞에서 자신은 쓸모없다고 고백하는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과 통한다.

 

※김 영 시인은 1995년'자유문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다시 길눈 뜨다'와 수필집 '뜬 돌로 사는 일'등을 냈다. 김제 만경여고 교사로 재직 중인 시인은 독서대상 대통령상·신지식인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전북여류문학회 회장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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