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실상사에서 만난 응묵스님(부주지)은 우리 역사에서 지리산의 불교, 사찰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해 왔다고 설명했다.
-지리산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지리산은 풍수지리적으로 살펴볼 때 사람의 꽁지뼈에 해당합니다. 꽁지뼈를 다치면 힘을 못쓰잖아요. 지리산은 그만큼 중요한 산입니다. 우리나라 정기를 뿜어내는 산이고, 그래서 어머니의 산이요, 영산입니다.
-지리산에서 불교는 어떤 위치에 있었습니까.
지리산의 불교는 단순히 종교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이끌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선종불교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죠. 당연히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왜구들이 진주 남강을 통해 침략하고, 후백제 견훤의 세력이 지리산까지 뻗쳐있는 것이 원거리에 있는 경주에는 거슬렸을 것입니다. 실상사는 왜구와 후백제 견제세력이었고, 화엄사는 신라 통일의 기반이 된 화랑도를 육성했고, 쌍계사는 범패와 차문화를 발달시켰습니다. 지리산의 불교는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불교가 지리산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불교는 지리산 주민들에게 정신적 지주였을 것입니다.
조선 중엽에 불이 난 실상사에는 탑과 철부처님(보물 제41호, 최근 철불 안에서 수인이 발견돼 아미타불로 밝혀짐)만 남았죠. 주민들이 철불을 찾아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빌었고, 많이 나았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약사여래가 돼버렸어요. 실은 아미타불인데 약사여래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도 주민들의 정서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불교는 주민들과 교감하며 발전해 왔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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