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 모여 조선시대 '보드게임' 즐겨 보세요
명절이면 사람들은 판을 깔고 둘러앉아 '패'를 돌린다. 한가위 달밤에 술이 한 잔 두잔 돌 무렵이면 광(光)구경으로 달(月)구경을 대신한다. 화투를 앞에 놓고서야 친목도, 동기간 안부도, 조카딸이 대학 들어간 일도 제대로 말이 척척 들어맞는다. 하지만 화투가 일본이 아닌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화가투'에서 유래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가위를 맞아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 '연'이 복원중인 우리의 전통놀이를 소개한다.
조선시대에도 보드게임이 있었다. 이른바 '승경도'(陞卿圖)다. 숫자(1~5)가 적힌 오각 모양의 주사위 '윤목'을 굴리면 나오는 숫자대로 말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가로 10칸, 세로 14칸으로 이뤄진 승경도 놀이판에는 가장 높은 정 1품부터 가장 낮은 종 9품까지의 조선 관직이 칸칸이 쓰여져 있다. 문과의 경우 영의정, 무과는 도원수가 최고 관직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빨리 오르면 이긴다. 윤목이 잘못 나오면 유배를 가거나 벼슬에서 쫓겨날 수도, 복직될 수도 있다.
'벼슬살이 도표'라는 뜻을 지닌 승경도는 태종의 책사였던 하륜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건국 이후 고려와는 다른 관직의 형태와 이름을 양반들이나 서당에 다니는 학동들이 쉽게 익히도록 고안된 것.
종 9품에서 정 1품까지의 관직을 순차적으로 승진해 먼저 퇴임하면 이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즐겼기 때문에 윤목을 위로 던지지 않고 바닥에 굴리고, 자신의 차례에는 "에헴!"이라고 헛기침을 한 뒤 시작한다.
'고누'는 쉽게 말해 바둑과 같다. 바닥이나 종이에 판을 그린 뒤 바둑돌·풀잎 등을 말로 삼아 승부를 겨룬다. 판의 모양에 따라 우물 고누, 호박 고누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 '참고누'가 가장 완성된 형태로 간주된다.
참고누 판은 크기가 다른 사각형 3개와 이들을 잇는 8개의 선으로 이뤄진다. 조선시대 관문을 지킨 병사들이 심심할 때 즐겨 했다는 놀이로, 색이 다른 말을 12개씩 나눠 가진 뒤 고누판의 교차점에 말을 1개씩 번갈아 놓아 상대의 길을 막거나 말을 따먹는 것이다. 자신의 말 3개가 한 줄에 나란히 놓이면 "꼰!"이라고 외친 뒤 상대의 말 1개를 따고 그 자리에 표시한다. 그 자리엔 말 12개를 다 쓸 때까지 아무도 말을 놓지 못한다.
백제 시대에 도입 돼 조선 중기까지 왕실이나 사대부, 양반들이 즐기던 '쌍륙'은 2명이 주사위 2개를 던져 15개씩 말을 움직여 가장 먼저 판에서 말을 빼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상·하, 좌·우 6개씩 36칸이 있는 판의 위·아랫줄엔 1~6까지, 왼쪽·오른쪽 줄엔 '가나다라마바'를 적는다. 한 팀은 숫자, 다른 팀은 글자를 맡는다. 팀당 12개 말을 칸마다 2개씩 놓고, 이 말을 맨 위에서 맨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모두 옮겨야 이긴다.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만큼 칸을 건널 수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실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楮蒲記)에 나오는 '저포놀이'는 나무 주사위를 던져 승부를 다투는 놀이로, 윷놀이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다르다. 추석 혹은 정월대보름에 거북 모양 탈을 만들어 쓰고 집집마다 다니며 풍년과 복을 기원하는 '거북놀이'와 두 사람이 엉덩이를 붙여 멍석을 뒤집어 쓴 뒤 소의 시늉을 하며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이나 부농의 집을 찾아가 대접을 받는 '소놀이'도 잊혀진 전통놀이 중 하나다.
●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 '연' 김소영 소장 "전통놀이는 경쟁보다 공동체 정신 중요"
- 협동심·배려심 배울 수 있어 학폭 등 사회문제 해결 도움
전통놀이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윷놀이부터 떠올리는 이들에게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 '연'의 김소영 소장(43)은 늘 답답했다.
전통놀이를 연구한 지 9년, 전주 서신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연구·교육 사업에 팔을 걷어 부친 지 4년.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6년 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향토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거의 방치 수준에 놓여 있던 전통놀이가 눈에 들어왔다. 임영순 연기향토박물관 관장의 도움으로 문헌을 찾아보고 연구하면서 승경도·쌍륙·저포놀이 등 잊혀질 뻔한 전통놀이가 그에 의해 현대인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로 복원되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것은 무관심과 무지였다.
"전통놀이를 제대로 다룬 문헌이 극히 적거든요. 일제 강점기 전통의례 말살정책 일환으로 전통놀이가 변질되면서 본래의 형태를 더 알기 힘들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놀이의 보존과 복원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직결되는 것이잖아요. 저의 뜻에 동참하고자 자원봉사자로 활동해주시는 회원들 덕분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씩 내놓고 있습니다."
전통놀이의 대중화를 위해 '놀이'에 중점을 둬서 전국의 축제 현장, 박물관·미술관의 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으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정신'.
"무한경쟁으로 지쳐 있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나눔과 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 정신"이라고 강조한 그는 "우리의 전통놀이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욱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데다 얼굴을 맞대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놀이였다는 점 덕분에 협동심, 배려를 배울 수 있어 학교 폭력·왕따와 같은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김 소장의 유일한 바람은 전통놀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 확보다. 특히 전통문화중심도시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한옥마을에서 전국에서 시도하지 못한 전통놀이를 언제나 즐길 수 있게 한다면, 전주 한옥마을이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본 그는 "한가위를 맞아 어르신과 손주·손녀들이 둘러 앉아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을 꼭 가져볼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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